비스마르크
- 최초 등록일
- 2006.12.05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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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스마르크의 생애, 외교, 동맹체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목차
비스마르크의 생애
비스마르크의 외교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
본문내용
◈ 비스마르크의 생애
비스마르크는 독일 정치가였다. 그는 프로이센 출생하였고, 철혈재상(鐵血宰相)이라고도 한다. 베를린대학․괴팅겐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프로이센의 관리가 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영지경영에 전념하였다.
1847년 연합주의회 의원이 되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보수정치가로서 독일의 통일과 정치개혁 등 자유주의자의 요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48년 베를린에서 3월혁명이 일어나자 반혁명파로 활약했고 혁명 뒤 51년 프랑크푸르트연방의회의 프로이센대표, 59년 주러시아대사, 62년 주프랑스대사를 역임하였다.
그는 독일의 통일 방식에 대해 오스트리아와의 협조를 주장했지만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자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 통일을 결심하게 된다. 62년 9월 국왕 빌헬름 1세가 군제개혁을 둘러싸고 의회와 갈등을 빚을 무렵 빌헬름1세는 문제해결을 위해 비스마르크를 총리로 임명했다.
비스마르크는 <철혈정책>이라는 강경책으로 의회와 대립한 채 군비증강을 실시하였다. 그는 유산시민을 대표하는 진보당이 급진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으나 다시 혁명을 일으킬 생각이 없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덴마크전쟁(1864),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1866),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71)과 같은 일련의 전승 실적으로 국내 반대파의 비난의 소리를 멎게 했다. 몇 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71년 그는 독일제국을 건설하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 시민계급의 오랜 숙원이었던 독일 통일을 완성하였다.
독일의 통일 과정은 독일 산업혁명의 완성과도 일치하였다. 그는 일관된 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영업의 자유와 보호관세의 폐지를 추진하였으며, 철도․은행․우편 등 국민경제 발전에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였다. 독일의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가 반혁명적인 정치적 목적을 갖고 독일통일을 했을지라도 옛 지배층의 대표가 신흥 시민계급의 요구를 일부 앞서 실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한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