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뱅의 직업소명설과 예정설 그리고 종교개혁
- 최초 등록일
- 2006.11.14
- 최종 저작일
- 2006.11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칼뱅의 직업소명설과 예정설, 종교개혁 그리고 그의 사상과 칼뱅에 대한 평가들.
목차
Ⅰ.칼뱅(Calvin)의 생애
Ⅱ. 종교개혁
Ⅲ. 칼뱅의 사상
Ⅳ. 저작
Ⅴ. 국가관
Ⅵ. 평가
본문내용
Ⅰ.칼뱅(Calvin)의 생애
- 스위스의 장 칼뱅은 프랑스 출신으로 더욱 엄격한 종교 개혁가로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cardie) 지방 누아용(Noyon) 출생. 아버지는 지방 귀족의 비서 ·경리 등으로 일한 소시민이었다. 1523~1528년 파리에서 신학을, 그 후 오를레앙 부르주의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다. 1532년 세네카의 《관용에 대하여》의 주해(註解)를 발표하여 인문주의자로서의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가 활약한 제네바를 신성한 신의 나라로 만드려고 하였다. 그는 성경 말씀에 따라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오로지 신을 섬기는 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죄악으로 여겨 엄격히 통제하고 몸과 마음이 신 앞에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청교도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청교주의는 기독교 사회에서도 이단시되어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Ⅱ. 종교개혁
- 루터의 개혁 운동에 자극을 받아 각국에서도 교회 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스위스에서는 16세기 말 이후 활발하게 민주화가 추진되고 있던 취리히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곧 1519년 애국적인 사제 츠빙글리가 종교 개혁을 일으켜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고 교회의 타락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루터는 시정을 개혁하고 종교적 자치 도시를 만들었으나 1531년 구교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개혁 운동은 침체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스위스의 종교 개혁 운동은 그 뒤 프랑스에서 망명한 칼뱅이 제네바에 개혁 교회를 세움으로써 다시금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북프랑스의 중산 계급으로 태어난 칼뱅은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다가 뒤에 휴머니즘 연구에 몰두하고, 1534년에 카돌릭 교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일으키겠다는 뜻을 세웠다. 구교국인 프랑스에서는 이단의 박해가 심하였으므로, 박해를 피하여 스위스의 바젤로 가 『크리스트 교 요강』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는 루터ㆍ쯔빙글리 등의 영향력이 농후하게 나타나 있으나, 세계 각국에 널리 호소하기 위해 썼던 만큼, 루터ㆍ쯔빙글리보다 훨씬 국제적 보급에 알맞았다. 칼뱅은 루터의 성서 존중 태도를 더욱 발전시켜 `성서 영감설`을 주장하였다. 성서의 기록자는 신이 인도하는 대로 받아 적은 것에 불과하므로 성서는 신이 스스로 지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성서는 절대로 신성한 것으로 한 자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