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 정철, 윤선도
- 최초 등록일
- 2006.10.18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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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세 시가론의 송순, 정철, 윤선도를 인물 과 작품을 들어..
목차
송순, 윤선도, 정철
본문내용
송순(宋純, 1493~1583)은 신평 송씨(新平宋氏)로 1세는 구진(丘進)이다. 신평 송씨는 원래 여산 송씨(礪山宋氏)에서 출계한 주은(柱恩)의 후손으로 구진이 비조(鼻祖)이다. 신평 송씨는 5세인 현덕(玄德)까지 충청도 신평, 홍주, 연산 등지에서 살았다. 송순이 호남인으로 태어난 것은 구진의 5대손이고 송순의 현조(玄祖)인 희경(希璟)이 신평에서 전라도 추성(秋成) 곧 지금의 담양으로 이주하여 호남인이 된 연유 때문이다. 고조 송희경이 낙남(落南)했던 이유는 자세하지 않으나 아우 구(龜)가 고려의 유신으로 조선에 대항했던 불복신(不服臣)이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조선으로부터 괄시를 받던 구(龜)가 전라도 장성 삼계(三溪) 당시 영광으로 칩거하자 친형인 희경도 따라서 호남으로 온 것으로 생각된다. 송희경이 호남에 이거한 지 70여년 뒤 증 이조 판서(贈吏曹判書) 효사당(孝思堂) 태(泰)와 조시옹(趙時雍)의 딸인 순창 조씨(淳昌趙氏) 사이에서 1493년(성종 24) 11월 14일에 송순이 태어났다. 태생지는 추성군 봉산(鳳山)면 상덕리(기촌)(上德里(企村))이다. 송순 태어났던 생가의 유터는 고증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지금 상덕리 송진호(宋鎭鎬)씨의 집 뒤 대밭 속으로 알려져 있다. 담양군 봉산면 상덕리에서 태어난 송순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관향(貫鄕)은 신평(新平)이며 자는 수초(守初) 또는 성지(誠之)라 했고, 호는 기촌(企村) 또는 면앙(俛仰)이며, 시호는 숙정(肅定)이다. 송순은 어린 시절을 상덕리에서 보내면서 학문을 익힌다. 또한 환로의 생활을 벗어나면 기거는 언제나 생가와 면앙정에서 보냈으니 그의 <면앙정가>에서와 무등산의 한 활기 밑에서 살았던 분이다.
송순의 수학은 지지당 송흠(知止堂 宋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송흠은 송순의 숙항으로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높은 관리고 청백리에 뽑힌 청렴한 깨끗한 큰선비였다. 이 송흠의 가르침으로 장차 정치가와 대문인으로서 기초와 방향을 잡았다. 다음 1513년부터 1514년까지 당시 담양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대학자 눌재 박상(訥齋 朴祥)으로부터 수학하였다. 박상은 길재(吉再) - 김종직(金宗直) - 김굉필(金宏弼) -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는 조선조 사림의 전통학맥을 이은 호남사림의 종주이기도 하다. 이 박상으로부터 송순은 인생과 삶의 철학을 확실히 익혔다고 본다. 박상의 아우인 박우(朴祐)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또한 1516년에 능성현감(陵城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패관서《어민순(禦民楯)》의 저자인 취은 송세림(醉隱 宋世琳)에게서도 배웠다.
그의 수학은 꽃을 피워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乙科)에 급제, 종9품인 승문원 부정자(承文院 副正字)를 시작으로 1520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마친 뒤, 1524년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가 되고, 1527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1533년(중종 28)에 김안로(金安老)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는데, 이때부터 임제·김인후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