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사랑은 영원한가?
- 최초 등록일
- 2006.04.25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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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랑에 관한 짧은 글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1. 봄날은 간다
2. 사랑의 네가지 측면
마치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사랑은 많은 종류가 있다. 연인간의 사랑,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도 있다. 상하(上下)의 사랑을 보자. 유대인은 신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하고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을 필리아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자애라고 하며 자식의 사랑을 효라고 한다. 연인의 육욕(肉慾)을 에로스(Eros)라고 하며 그들의 정신적인 사랑을 플라톤의 이름을 따서 플라토닉 러브라 한다. 이는 모두 다른 관념이지만 모두 사랑이다. 따라서 간단하게 이것을 사랑이라 하고 규정하기는 힘들다. 내포가 넓은 외연은 규정하기가 힘들다. 사랑에 과학이란 잣대를 댈 수 없는 이유다. 사랑은 무수하게 옳은 개념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허진호 감독의 2001년 작 <봄날은 간다>를 보라. 변심하려는 극중 이영애에게 극중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따진다. 이영애에게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것이지만 유지태에게 사랑은 당연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이 옳을까? 답은 없다.
인간을 유전자기계로 생각하는 생물학자에게 사랑은 당연히 무한하며 변화무쌍하다. 존재가 지속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랑은 드 비어스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하다. 생물학자의 시각을 빌려보자 사랑은 유전자 (DNA)의 명령이다. 우리가 왜 사랑을 하는가? 이는 종족번식이라는 본능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몸이란 것이 유전자를 일정기간 동안 보관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이 주장이 옳다면 사랑은 무한하지만 변한다. 유전자는 무궁히 종족의 번식을 꿈꾼다.
우리는 왜 섹스라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신분석학자는 타나토스와 에로스의 개념을 준비한다. 이 역시 생물학의 발전 덕분이다. 타나토스(Thanatos)는 죽음에 대한 본능이고 에로스(Eros)는 사랑에 대한 본능이다. 만약 우리가 불사(不死)하다면 섹스는 필요 없다. 아메바 같이 단성(單性) 생식하는 생명체는 섹스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있기에 사랑을 한다. 죽음을 극복하는 길은 섹스를 통한 자신의 유전자 복제(아들 혹은 딸)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DNA의 명령이다. 우리는 껍데기일 뿐이므로 한계가 있겠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한계가 없다. 유전자는 영원히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이 같이 우리의 사랑은 무한하며 무수한 다양성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