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최윤 - 회색눈사람
- 최초 등록일
- 2006.04.12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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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상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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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70년대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는 <회색눈사람>은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하원이라는 여자가 아사로 죽었다는 한 일간지의 기사로 인해서 주인공은 이십 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난 후에야 ‘우리’라고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녀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소외된 존재였는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믿음’으로 얽혀야만 하는 지하운동권의 세계에서 ‘우리’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면, 도대체 이해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런데 그녀는 ‘우리’라고 부를 수 없었던, 자신을 불안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거리를 두었던 존재들 속에서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움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발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불우한 가정과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녀의 삶에서, 발걸음이 닿을 수 있었던 목적지가 있었기 때문일까.
소설 전체가 짙은 회색으로 가리어진 채로 우울하고 차분하다 못해서 침잠되어 있는, 깊은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독재 정권에서의 불법적 운동권에 몸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정의로운 것인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고 훌륭한 일이었음은 배워서 알고, 누누이 들어서 알고, 텔레비전 혹은 책을 통해 보았으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짐작만 할 뿐이다. 얼마만큼인지, 그 시대가 얼마만큼 무서운 시대였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인공에게 느끼는 감정은 지하 운동권에서 무명의 조직원으로 활동했다는 신상 정보에서 오는 정의로움보다는, 그녀가 느꼈을 쓸쓸함과 외로움이었다.
즉 실제 강하원이라는 여자가 느끼는 개인적 고독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도와줬던들 신뢰받지 못했고, 따라서 중심에 가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과 깊게 관계할 수도 없어 ‘우리’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을 끝까지 도왔고 김희진에게 여권을 내어주었다. 안에 대한 감정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확신한다. 안에 대한 감정이 원인이었다면 김희진이라는 여성에게 그토록 잘 대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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