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김두한, 정말 그는 의로운 협객이었나?
- 최초 등록일
- 2006.01.08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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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안에 화재를 몰고 있는 드라마 <야인시대>가 전국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김두한이라는 인물을 이제는 유치원생도 알고 있으며, 여러 방송과 신문에서는 그의 인생을 찬양하며 내보내기도 했다. 또한 김두한을 사랑하는 모임인 ‘두사모’가 탄생하기도 했으며, 인터넷 온라인 상에서도 김두한의 열기가 뜨거웠다. 김두한에 대한 이야기가 비단 요즘에만 나오는 현상은 아니다. 김두한의 사망 이후 1970년대에 신상옥 감독, 이대근 주연의 <협객 김두한> 시리즈로, 1980년대에는 소설가 홍성유에 의해 <조선일보>에 연재된 <인생극장>으로, 그리고 1990년대 벽두에는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그리고 세기가 바뀐 뒤에는 <야인시대>로 김두한에 대한 향수는 끊임없이 되살났었다. 물론 이런 소설이나 영화에 비추어진 김두한의 생애는 엄청난 과장과 미화로 역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신화로 우리 앞에 서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의 신화가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그의 인생을 통해 살펴보자.
목차
김두한, 정말 그는 의로운 협객이었나?
1. 서론
2. 김두한이 항일 협객이라고?
3. 종로깡패에서 정치깡패로
4. 유명한 ‘국회 오물투척사건’
5. 마치며
본문내용
만약 김두한이 “총을 들고 싸우는 것도 독립 운동이지만 종로의 상권을 지키는 것도 독립 운동"이라며 "우리도 거리의 독립군이 될 수 있다"고 권유하던 ‘쌍칼’을 물리치고 만주로만 갔더라면, 그도 시장통에서 소위 ‘삥`이나 뜯는 깡패가 아니라 독립군으로서 당당히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종로 깡패 김두한`이나 ’우익 깡패 김두한`이 아닌 ‘독립군 김두한`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 모두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다.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한다고 지나간 역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요, 어떤 새로운 가치가 더 부여되는 것도 아닐 터이다.
다만 주먹을 매개로 한 상명하복과 ‘힘`이라는 절대권력에 대한 맹종, 폼생폼사라는 헛된 망상이 판치는 요즘의 드라마〈야인시대〉를 보고 있노라면, 자칫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어린아이들이 부지불식간에 ‘저런 삶도 멋있구나` 혹은 ‘김두한도 독립운동을 했구나`하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될까봐 불안하기도 하다.
김두한과 하야시의 차이점은 자릿세가 싸다는 것말고는 없다. 깡패 문화의 문제점은 옳고 그름이 주먹으로 판가름난다는 데 있다. 이 점은 동네 양아치가 와서 가게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김두한의 부하가 두들겨 패고 이들에게 훈시하는 웃기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즉 강한 게 정의라는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이 뚜렷하지 않은 현실 정치판보다야 통쾌하지만 아주 위험한 논리다. 또한 역사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릇된 논리와 사고방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우리 역사 전체에서 김두한이라는 인물은 아주 미세한 부분이지만 그러한 작은 역사적 사실들도 제대로 밝혀내고 오늘날의 의미를 새로이 정립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