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여류가사
- 최초 등록일
- 2006.01.04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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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시간에 제출한 여류가사 레포트입니다. 여러 논문을 참고로 열심히 한 것이구요, 깔끔하게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목차
1. 여류의 평민가사와 양반가사
2. 내방가사의 의미와 발전과정
3. 내방가사의 형식과 내용
4. 작품
1) 규원가(閨怨歌)
2) 봉선화가(鳳仙花哥)
3) 상사별곡(相思別曲)
4) 화전가(花煎歌)
본문내용
- 내방가사: 가사문학의 한 장르. 영남대가내방가사의 준말로서 ‘규방가사’라고도 한다. 조선 말엽, 가정에 들어앉은 부녀자의 손에 의해 지어지고 전해진 가사의 총칭이다. 그 효시로 이현보의 자당 권씨가 지은 <선반가(宣飯歌)>를 꼽고 있다.
- 창작시기 및 창작배경: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은 한때 일부의 국한된 학자층에서만 창작되는 감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쳐 영․정조 이후 민간에 널리 보급됨에 따라 일반 평민층과 부녀자들 사이에서도 그 창작이 활발해졌다. 조선시대의 학문이나 문자교육은 한문․한자교육에만 치우쳐져 있어 사대주의적 학문관에 빠져 있던 일반학자들이 등한시한 우리글은 상대적으로 부녀자층에 쉽게 파급됨으로써, 여성의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예술성을 지닌 시가가 많이 창작되었다. 이같은 부녀자들의 시가창작행위를 ‘규중가도(閨中哥道)’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란 남존여비의 봉건적 사상에 유린된 상태로서, 여자는 규중에 들어앉아 음식, 침선, 봉제사, 접빈객 등이 주된 사명이고 문화적․사회적인 일에는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녀자들은 당시의 표준적 문자교육이던 한문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나 당시의 학자층에서 등한시한 정음을 습득하여 가슴에 쌓인 채 표현할 길 없었던 ‘정’과 ‘한’을 절절히 노래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 부녀자들이 그들의 심정을 읊기 위해서는 가사의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니, 부녀자의 시가활동은 우리글의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규중가도’의 행위가 언제부터 부녀자들 사이에 유행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의 가사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 발전과정: 내방가사는 조선시대 발생한 새로운 시가형의 가사체로 성종과 선조 사이의 시기에 번성한 시가문학의 형태로 등장, 발생, 성장의 과정을 거쳤다. 그 뒤로 차차 쇠약해져서 주로 단가와 단음가에 압도된 후 시가문학으로서 문학적 위치를 완전히 올려놓지 못하고 일종의 소설, 희곡으로 시도하였다. 이것의 예가 곧 <심청전>과 <춘향전>에 동화되어 왔던 것이다. 다만 부녀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승해 왔다. 이것을 이른바 ‘규중가도’, 또는 ‘내방가사’라고 불리어 왔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