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정도전
- 최초 등록일
- 2005.11.10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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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조선을 건국하는데 있어서 1등공신이 된다. 정몽주와 이방원의 라이벌로 알려져 있는 정도전은 그 학문적 사상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이름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와 경쟁하고 대립 하였던 정몽주는 고려의 충절이라는 말과 함께 선죽교라는 단어들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건국의 최고 1등공신이었던 정도전은 조선에서 조차 버림 받고 그의 무덤하나 남겨져 있지 않은 채 오늘날을 살고 있다. 그러한 이유에 있어서 그의 학문적인 사상이나 개혁정치 같은 것 들이 저 평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백성을 위한 위대한 개혁가였던 정도전을 다시 살펴보고 그가 왜 조선을 개국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려한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 정도전의 출생
2. 출사와 유배 생활
3. 이성계와 만남
4. 위화도 회군후 정도전의 개혁
5. 정몽주의 제거와 조선의 개국
6. 조선 개국 후 업적
7. 정도전의 죽음
Ⅲ.결론(정도전의 평가)
본문내용
정도전이 세상에 태어날 당시 고려는 몽골족의 사나운 간섭정치에 나라가 어지러웠지만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은 지조를 꿋꿋하게 지키면서 청렴결백한 관직생활을 했다. 고려사는 고려왕조의 청백리 다섯 명을 꼽고 있는데, 바로 정운경이 그 중의 한명으로 기술되고 있다. 그래서 정도전의 집안은 가난하고 정도전은 어린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정도전의 아버지는 세 아들의 이름을 청백리답게 도(道)를 전하고, 도를 간직하며 도를 회복하라는 뜻에서 도전(道傳), 도존(道存), 도복(道復)이라고 지었다.
정도전은 장성한 뒤 아버지의 친구이며 대유학자였던 이색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정도전은 정몽주, 이숭인 등과 동문이다.
정도전은 20세가 되던 해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나 당시 임명되었던 그의 관직은 통례문이라는 벼슬이다. 통례문은 단지 조회때 예식을 맡아보는 한직이다. 벼슬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상을 당해서 낙향을 했고 3년간 상복을 입었다. 정도전은 이때 정몽주가 준 맹자를 정독하였다. 맹자는 덕을 잃은 군주는 그 신하가 역성혁명을 할 수 있다는, 그 당시로서는 아주 놀라운 주장이 담겨있는 책이다.
탈상 후 정도전은 정 4품의 지제교로 임명되어 공민왕과 우왕에게 대학을 강의하고 정치현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1375년, 날로 국세가 기울어 가던 원나라는 주원장이 세운 신흥 명나라를 협공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고려를 방문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정몽주와 정도전 그리고 이숭인과 권근 등 신진 유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하지만 당시 실권자이며 친원파였던 이인임 일파는 그 의견들을 묵살하고 끝내 원나라 사신을 불러들였다. 이에 정도전 등은 아예 업무를 보지 않으면서까지 크게 반발하였다. 이인임은 당장 보복에 나서 주동자인 정몽주와 정도전을 따로따로 유배시켜 버렸다.
정도전이 유배된 곳은 멀리 전라도 나주의 회진현에 있는 천민부락이었다. 정도전은 그곳에서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참고 자료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 푸른역사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한영우』 ― 지식산업사
http://snewworld.xtpn.com/mainform.htm
http://100.naver.com/100.php?id=135920
http://blog.naver.com/ramiuss/100008699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