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문] 가의 과진론 해석
- 최초 등록일
- 2005.09.19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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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의의 과진론 원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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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나라가 산동 삼십여군을 병합하고 나루터와 관문을 수리하고 험한 요새를 점거하고 갑병을 보충하여 전국을 지켰다. 그러나 진섭은 흩어져있던 수백의 병사를 모음으로써 크게 고함지르며 싸움대열을 갖추어 활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쓰지 않고 괭이와 곰방메, 몽둥이를 무기로 쓰며 인가가 보이면 그곳에서 먹고 젗하를 횡행했다. 진나라 사람들이 험준한 요새를 지키지 않고 관문과 교량을 닫지 않고 긴 창으로 찌르지 않고 강한 쇠뇌도 쏘지 않았다. 초나라 군대가 깊이 들어와 홍문에서 싸웠으나 일찍이 울타리를 넘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에 산동이 크게 어지러워지니 제후도 함께 일어나고 호걸준걸이 함께 일어났다. 진나하는 장한 장군을 파견하여 동을 정벌케 했으나 그로인해 장한은 삼군의 병사를 가지고 외부 세력과 손을 잡아(항우와 밀약함) 자기가 높아지기를 도모했다. 여러 신하들의 (진에대한) 불신은 이로서 드러난다. 자영이 즉위했으나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을)끝내 깨닫지 못했다. 가령 자영이 보통 수준의 재능이 있고 단지 중간정도의 보좌관만을 얻었더라면 산동이 비록 혼란스러워도 진나라 땅을 모두 온전하게 보존하였을 것이며 종묘의 제사고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나라땅은 산을 등지고 강을 가짐으로서 견고하니 사방이 막힌 국가이다. 무공이래 진시황에 이르기까지 이십여명의 군주들은 항상 제후가운데 뛰어났다. 어지 대대로 현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 지리적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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