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 중국의 문자정책
- 최초 등록일
- 2005.07.18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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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전의 어문정책
2)중국인민공화국의 초기 언어정책
3)개혁개방(改革開放)정책이후 신시기 언어정책
4)언어정책의 과제
3.결론
본문내용
1). 한자 간화운동의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전의 어문개혁은 한자의 정리와 간화, 중국어 병음화의 노력 등 2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자간화는 19세기중반 아편전쟁이후 지식인들의 자각이 있기 전까지는 중국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한자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서구열강의 침략에 청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잇따르자 신성불가침한 영역을 문제 삼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 엄청난 글자 수에서 비롯된 곤혹스러움 때문에 개혁문제가 나타난 것 이였다. 한자간화가 본격적으로 운동의 단계로 접어든 것은 신지식인 육비규부터이며, 이러한 한자간화문제는 5.4운동 시기 호적, 전현동 등 지식인들이 한자간화를 부르짖으며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게 되었다, 특히 전현동은 번체자에서 간체자로 나아가는 것이 문자 자체 발전의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운동의 결실 속에서 1936년 2월 <제1차간체자표>(324자)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공포된지 반 년 만에 “보급할 필요가 없다”라는 명령이 내려 실제로는 추진되지 않았다. 이는 <제1차간체자표>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전 어문개혁의 한자간화의 마지막 노력이였고, 그것의 취소는 한자간화의 개혁이 중화인민공화국 이후로 넘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주음자모의 탄생
이러한 청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중국어 병음화운동은 1918년 <주음자모(注音字母)>를 교육부가 공포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주음자모는 당시 독음을 정할 때 임시로 쓰던 기음자모(記音字母)를 주음자모를 확정시킨 것 이였다.
참고 자료
‘중국의 언어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