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두발 양식과 수식
- 최초 등록일
- 2005.06.0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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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삼국시대 두발양식
2. 고려시대 두발양식
3. 조선시대 두발양식과 수식
본문내용
조선시대의 머리모양과 수식은 여자에게 편중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부녀자들은 머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수식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여인의 머리모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체로서 가체의 풍습은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이어서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가체의 크기와 장식으로 부를 과시하는 경향이 생겨서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장식은 금은주옥 칠보를 사용하는 등 점차로 화려해져, 이미 국초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결과적으로 가체로 인하여 가산을 탕진하는 등 국가경제에도 커다란 피해를 입히게 되어 현종은 당하관 부녀들의 예복의 수식도 비녀를 사용하고 머리 위의 수식은 모두 궁중의 모양에 따르고 금, 은, 옥의 사용을 엄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가체의 금지가 정식으로 제기된 것은 영조대의 일로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후로도 그 패해가 줄어들지 않자 조정에서 논의하여 “양반 부녀자의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를 사용하도록 명하였다. 가체는 고려시대에 시작된 몽고의 관습으로, 가체에 대한 사치가 날로 심하여져 가체에 백금을 소비하고 이를 본받으려 힘쓰며 되도록 높고 크게 만들려고 하므로 이를 금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그러나 족두리는 궁중양식과 구별이 없고 족두리에 값비싼 장식을 하여 그 비용 또한 가체와 같았으며 가체의 풍속 또한 사라지지 않아서 발려 8년 만에 폐기되었다.
정조에 이르러서는 정조 12년 가체 금령과 더불어 큰머리를 간편하게 하는 것은 곤 제왕의 뜻이라 하여 부녀자들이 이 뜻을 따르도록 전교를 내렸다. 사치를 금하기 위해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를 사용하라고 명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