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고려시대의 머리양식
- 최초 등록일
- 2006.09.06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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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에 여인들이 했던 머리모양을 추측하여
그 머리 양식에 대한 설명과 머리에 사용했던 장신구에 대한 레포트
목차
1.머릿말
2.고려시대에 영향을 준 주변국
3.고려시대 여인의 머리양식
4.고려시대의 머리쓰개와 장신구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고려를 정치사적인 면모가 아닌 문화사적으로 본다면 후기신라 못지않게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를 소유한 국가였다. 화려했던 고려의 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알아보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들어나 보이나 다소 편중되어 연구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고려의 의복과 생활양식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 선보이거나 많이 연구된 반면, 고려시대의 머리양식에 관해서는 그 연구가 미흡한 면이 많다. 알려진 문화를 더욱 가꾸어 나가는 것도 좋은 일이나 아직 선보이지 못한 문화, 고려 머리양식에 대해 알아보는 것 또한 더 할 수 없는 미덕일 것이다.
고려 500년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려는 고려의 자체의 머리양식을 발전시켰으며 그 뿐 아니라 대외적인 영향, 즉 당시의 유력한 국가들로부터의 문화 또한 고려의 머리양식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영향을 준 주변 국가에 대해 살펴보고 고려의 여인들이 얼마나 화사한 머리양식과 장신구들을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2. 고려시대에 영향을 준 주변국
936년 왕건의 후삼국 통일로부터 시작되는 고려는 초기에 신라적인 요소와 신라 말 토호와의 연립적인 냄새가 짙었다. 제 6대 왕인 성종 이후 재편성기에 이르러 비로소 중앙 집권적인 고려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고려는 미족의 구성요소를 풍부히 하기 위하여 주변 여러 민족과 개방적인 정책을 쓰면서 교류를 폭넓게 함으로써 생활문화의 폭을 넓혔다.
고려가 건국될 시점 중국에는 오대가 각축전을 벌이다고 결국 송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요를, 여진의 아골타가 금을 세워 고려와 교통을 하였는데 요는 송과 금의 협공으로 망하고, 송은 금에게 망했으며, 금은 결국 원에게 망하고, 원은 명에 나라를 넘겨주었다. 이시기는 거의 오백년간으로 고려는 한반도의 주인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런 중국의 변화는 고려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한족뿐이 아니라 만주족, 몽골족과도 교류가 오갔기 때문에 고려에 밀려온 문화적 영향은 상당히 컸다. 특히 몽골족은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 하면서 백년 가까이를 지배해 왔기 때문에 고려의 풍속까지 바꿀 정도로 그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 한반도 여인들의 머리모양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화려했다.
참고 자료
《한국여인의 발자취》, 손미정, 이환출판사, 2001
《우리나라 여성의 머리양식사》, 이선재*김정진, 신광출판사, 1998
《민속학술자료 총서 - 전통복식7》 , 도서출판 우리마당 터, 2004.
《한국의 복식》, 백영자 저, 경춘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