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문]고전문학에 나타난 성적표현
- 최초 등록일
- 2004.12.21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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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에 나타난 성적표현들을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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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시대에는 아직 우리문자가 창제되기 전이기에 한문학이 문학의 주류를 형성함으로써 우리 문학은 민족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왔다. 한문학은 주로 귀족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을 뿐 평민들은 다른 방법으로 문학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기체가가 귀족의 문학이라면 속요는 평민문학이었다. 속요는 장가의 형식으로 평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한글이 창제된 후, 성종 때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악장가사(樂章歌詞),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에 실리게 되었다.
속요(고려속요)의 작자는 정서와 같은 개인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도 더러 있지만, 민요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궁중에 유입되어 속악가사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대개 작자가 불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속요의 향유계층은 왕과 왕을 둘러싸고 있는 폐신들, 즉 고려 후기의 지배계층인 권문세족들이 그 중심이라 하겠다.
속요의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진솔한 사랑의 얘기, 자연에 대한 예찬 등 평민들의 성정이 솔직 담백하고도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속요의 어조에는 해학적인 것, 체념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세속을 초탈한 선적인 관조가 나타난 것도 있다. 체념 속에서도 두드러진 서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속요의 특징인데, 이 속요의 서정성은 귀족층의 가요인 경기체가가 지극히 형식적, 매너리즘에 빠진데 비하여 그 내용이 매우 절실하고 함축적이다. 그러나 대부분 속요의 내용은 남녀의 사랑에 관계된 일을 노래한 것이 절대 다수였다. 그래서 조선조 유학자들의 지탄을 받아 많이 일실 되었음에도 남녀 관계를 노래한 애정요가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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