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조 전후의 역사(계축옥사~효종)
- 최초 등록일
- 2004.11.06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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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계축옥사(1613)
2. 광해군의 내정과 외치
3. 인조반정(1623)
4.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5. 효종과 북벌의 꿈
본문내용
▷ 광해군이냐 영창대군이냐
계축옥사란 1613년(광해군 5) 사색당파(四色黨派) 중의 하나인 대북파(大北派)가 일으킨 옥사(獄事)를 말한다. 이 계축옥사를 계기로 광해군은 왕통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
임진왜란은 왕실의 세력판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임진왜란동안 여러차례 위기를 맞았던 선조는 피난길을 재촉하는 반면 광해군을 왕세자로 삼고 분조(分朝) 활동을 통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도록 하였다. 당시 18세였던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며 대외항쟁에 나섰고, 강력한 주전론을 전개한 북인세력과 호흡이 잘 맞았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약한 모습과 대비되어 광해군의 인기는 급상승하였지만, 1602년 정비 의인왕후가 사망한 후 인목왕후가 계비로 들어오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계비인 인목왕후가 정실인 영창대군을 낳음으로서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광해군은 정실 소생이 아닌 후궁인 공빈 김씨의 소생이었음으로 세자로 책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선조 또한 영창대군에게 많은 애정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