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비평론]포스트구조주의와 존말코비치되기
- 최초 등록일
- 2004.10.29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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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지 많이 고생하며 쓴 리포트입니다.
에이쁠받았습니다.
목차
Ⅰ. 라캉
1. 타자의 담론, 무의식의 담론
2. 타자의 욕망 - 도둑맞은 편지
3. 진리의 배달부, 그리고 주체화
4. 야누스 라캉 -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
Ⅱ. 『존 말코비치 되기』 - 찰리 카우프만과 라캉
1. 7과 1/2의 공간
2. 크레이그의 존 말코비치 되기
3. 말코비치의 존 말코비치 되기
4. 로테의 존 말코비치 되기
5. 가상과 실재의 혼재
Ⅲ. 나가면서..
본문내용
Ⅱ. 『존 말코비치 되기』- 찰리 카우프만과 라캉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는 독특한 구성과 구도로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마치 기존의 영화형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영화의 속과 밖을 탈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뒤섞어 놓는다. 관객의 입장에서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살펴볼수록 생각할수록더 깊이 빠져든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중심적 사건은 존 말코비치 속으로 들어가 본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말코비치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가.
1. 7과 1/2층의 공간
왜 하필이면 7층도 아니고 8층도 아닌 7과1/2층에 사무실이 있을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간인 것인가. 1/2의 의미는 주체와 타자의 상호관계에 놓여져 있는 인간의 삶을 상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즉, 인간은 언어를 배움으로써 이전의 짐승과 같은 주체의 자기동일성을 일었지만 욕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 욕망으로 상징계를 통해 자기동일성을 다시 획득하려 하는데 주체와 타자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은 바로 상징계에 의해서이다. 인간의 삶은 곧 상징계의 장인 것이다. 이것은 곧 관계의 장이기 때문에 그 관계의 중간성을 상징하는 1/2이라는 도구를 영화에 심어놓았다고 생각한다. 말코비치 속에서 머물 수 있는 15분이란 제한된 시간이 이 관계로서의 두 삶이 합해진 시간을 상징한다고 본다.
참고 자료
스파이크 존즈 감독, 『존 말코비치 되기』, 1999.
http://blog.naver.com/leeruy.do (leeruy님의 블로그)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맬컴 보위 지음/이종인 옮김, 『라캉』, 시공사, 2003.
남경태,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광개토, 2001.
발리스 듀스 지음/남도현 옮김,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개마고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