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리] 항우vs유방(왜 유방이 항우에게 승리할 수 밖에 없었는가?)
- 최초 등록일
- 2004.05.2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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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항우와 유방의 기질차이를 비교하고 왜 이러한 기질의 차이를 낳았는지, 그리고 왜 유방이 천하를 재패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논리라고 하셨었죠
목차
1.항우
2.유방
3.항우와 유방
4.지역적 측면에서 살펴보는 항우와 유방
본문내용
1.항우(項羽, BC 233- BC 202)
진(秦)나라 말기 하상(지금의 강소성 숙천 서남)출신으로, 이름은 적(籍), 자는 우(羽)이다. 초나라 귀족 집안 출신으로 비록 초나라 권역이 아닌 강소성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나 초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부 향연과 반진(秦) 운동을 펼친 숙부 향량의 가르침하에 철저한 초나라 사람으로 성장했다. 외견상으로는 키가 8척이 넘고 세발달린 걸솥을 한번에 드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항우는 분명 대단한 야심가였으며 정이 많고 질투심,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젊은 시절 ‘문자는 제 이름을 쓸 줄 알면 충분하고, 검술이란 1인을 상대할 뿐인 하찮은 것’이라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도 회계산(會稽山)에 행차하는 진나라 시황제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저 녀석을 대신해 줄테다’라고 호언장담 하였다는 일화가 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히 항우의 기질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유방(劉邦, BC 247- BC 195)
중국 한(漢)나라의 제 1대 황제(재위 BC 202-BC 195)인 한고조 유방은 자는 계(季)이며 강소성의 가난한 농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가업은 멀리한 채 유협(遊俠)의 무리와 교유하여 장년에 이르러서야 정장이라는 하급관리가 되었으니 여기서 정장이란 조그만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고 공사에 부역하는 인부의 호송을 책임지는 그리 중요치 않은 역할을 맡았다.
참고 자료
항우와 유방/시마바타 료
차이나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