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여말선초의 성리학적 정치 담론에서의 개혁과 안정
- 최초 등록일
- 2004.01.02
- 최종 저작일
-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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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업과 수성의 정치사상]이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쓴것입니다...
그 외에 정도전과 권근의 자료가 첨부되어있습니다...
많은 도움되길 바랍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본문내용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흔히 선비라면 조용한 학자를 떠올리지만 삼봉(三峰)은 최고 학부인 성균관 강학(박사)출신의 학자이면서도 유약한 선비가 아니었다. 한 손에는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었다고 스스로 자처하는 영웅 호걸 형의 선비였다. 그래서 그의 붓은 문명 개혁의 고전을 만들어냈고, 그의 칼은 썩은 왕조를 도려냈다. 난세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이처럼 정도전(鄭道傳)은 우리가 대강은 알고 있듯이 조선 왕조를 이성계와 함께 열었고,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으로 봉하여지기까지 여말선초의 시기 동안 정치․사상적인 면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나, 태조 7년(1398) 제 1차 왕자의 난시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제거된 후 역신(逆臣)으로 몰려 행장이나 묘비는 물론 출생 연도까지 불확실하게 남겨졌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우리는 정도전(鄭道傳)을 부정적으로 보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에 대한 평가가 다시 내려지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는 시대적 상황과 흐름에 의해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권근(權近)이 살았던 시대는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정치,사상적인 격변기였다. 당시 권근(權近)은 그의 선배들이 몰락한 상황에서 스승인 목은 이색(李穡)의 학문적 종지를 전수 받은 유일한 사람으로서, 문형(文衡)을 전장하고 조선조의 전장,문물,제도,외교 기타 각종 관찬 사업을 이룩하는 등 조선 초 그 역할이 매우 컸는데, 그의 해박한 학문과 탁월한 문제는 이미 여말에서부터 두드러진 것이었다.
참고 자료
[창업과 수성의 정치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