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국토] 부천시 조사 (도시와 국토)
- 최초 등록일
- 2003.12.02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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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말 구하기 어려운 표와 그림이 엄청엄청 많이 있습니다. 물론 A뿔 받았고요..ㅎㅎㅎ 걱정말고 사세요.
특히 인구변화랑 행정구역도 잘 해놨어요.
목차
1. 부천시 조사 동기
2. 부천시의 역사
3. 자연환경
4. 인구변화
5. 지명유래
6. 동단위 행정구역도
본문내용
2. 역사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부천」이라는 명칭은「주부토」,「장제」,「수주」,「안남」,「계양」,「길주」,「부평」에 이어 8번째로 쓰인 우리 지방의 행정 명칭으로, 1994년 탄생 80주년이 되었었다.
1) 청동기시대
오정구 고강본동 청룡산에는 청동기 시대 살던 곳과 그 때 사용했던 물건이 발견되었다. 특히 집단 주거지는 경기도 서부지역(기서지방)에서는 처음 발견 되어서 부천이 기서지방의 중심지였음을 밝히는 주요 자료가 된다. 고강동 이외에도 중동 장말에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남방식 고인돌 1기가 전하고 있기 때문에 부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청동기시대부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인들이 현재 선조가 아님은 청동기 인들의 생활이 정착 생활이 아닌 이동생활을 한데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천에 청동기시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주거지를 형성하고 살았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고려이전
삼한시대-마한의54국 중의 하나에 속하였다고 하나 삼한지역의 위치에 대하여는 정확하지 않다.
고구려시대-고구려시대 부천은 주부토군(主夫吐郡)에 속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 때 주부토군이 장제군(長提郡)으로 바뀌었다.
3) 고려시대
고려 초에 부천은 이름이 수주(樹州)로 고쳐졌다고 하며, 고려시대 때 부천의 명칭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수주는 안남도호부가 되었다가 다시 계양도호부로 고쳐졌다가 길주목으로 되었고 부평부로도 되었으며 경기 우도에 속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