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와 국제기구 2차 과제 -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이후의 국제정치
- 최초 등록일
- 2016.01.22
- 최종 저작일
-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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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2차 세계 대전의 원인
1. 유럽-아프리카 전구
2. 아시아-태평양 전구
Ⅲ.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치
1. 유럽-아프리카 전구
2. 아시아-태평양 전구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2차 세계대전은 약 50여 개국 이상이 참전하였고 그 피해와 잔혹함은 타의 추종이 불허할 정도이기에 세계대전이라는 호칭에 결코 모자람이 없다. 일반적으로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고 종전일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재산적인 피해는 산출이 불가능한 수준이며, 인명피해는 사망자만 따져서 약 5~7천만 명, 소련,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기아로 사망한 간접 피해까지 추산하면 거의 1억에 근접하는 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2차 세계 대전은 하나의 전쟁이라고 보기 보다는 여러 전쟁의 연합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유럽-아프리카 전구에서 발생한 전쟁과 아시아-태평양 전구에서 발생한 전쟁이 통합된 것으로 본다. 세계 대전인 만큼 여러 국가가 참여하여 이해관계가 복합하며 그에 따라 전쟁의 원인 또한 복합적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유럽-아프리카 전구에서의 전쟁과 아시아-태평양 전구에서의 전쟁이 합쳐진 것이므로 각 전구에서 원인을 찾아보고 종전의 결과 국제 사회에서는 어떠한 세계질서가 형성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Ⅱ. 2차 세계 대전의 원인
1. 유럽-아프리카 전구
당시 유럽 대륙은 1차 세계 대전이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형성된 베르사유체제의 영향 하에 있었다. 베르사유체제는 패전국 독일을 억압하는 체제로서 성립되었는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강요당하여 식민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벨기에,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에게 영토를 내주어야 했으며, 엄격한 군비제한조치를 받으면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이러한 전쟁책임에 대한 과도한 처벌은 독일인의 불만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일으켰다. 특히 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인 프랑스는 독일에 대해 강경책을 추구하였는데 1차 세계대전의 결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이익을 얻어 부채를 탕감하고자 하였다.
참고 자료
2차 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 남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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