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현대’ 협상으로 보는 남북 정부 간 협상의 한계와 지향점 (금강산 관광 관련 이슈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5.06.07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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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북-현대(민간기업) 간 협상’
1. 금강산 관광 관련 협상
1) 금강산 관광 사업 추진 개요
2)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 억류사건
3) 현대의 협상자로서의 위치
4) 협상의 결과
Ⅲ. ‘북-현대(민간기업) 협상의 의의
Ⅳ. ‘남-북’정부 간 협상의 한계
Ⅴ. ‘남-북’정부 간 협상의 지향점
본문내용
Ⅰ. 서론
1948년 남북협상을 비롯하여, 분단 이래로 남북은 여러 사안들에 대해 고위급 회담, 정상 회담 등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협상 및 회담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남한 정부에 있어서 협상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만은 않았었다. 이러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남북 정부 간 협상 외 민간기업 등의 협상 사례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북-현대’ 간 금강산 공동개발 합의를 시초로 하는 금강산 관광 개시에 대한 사례와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의 북한 억류사건 관련 협상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였다.
본 학생은 이러한 금강산 관광 관련 협상을 중심으로 ‘북-민간기업’협상의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남한과 북한 사이의 효과적 협상을 위한 지향점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북-현대(민간기업) 간 협상’
1. 금강산 관광 관련 협상
1) 금강산 관광 사업 추진 개요
사실, 남북 간 관광사업은 김대중 정부 이전에도, 역대 정부들을 통해 남북 간 통일 정책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추진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은 대부분 제안에 그쳤고, 여러 이유들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했던 실정이었다. 이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급 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현대가 앞장서 금강산 관광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다.
금강산 관광개발은 1989년 현대그룹 정주영의 방북을 그 시초점으로 하고 있다. 그는 1989년 방북에서 ‘금강산-시베리아 공동개발 자금확보 방안’, ‘투입인원 내왕절차’, ‘관광객 내왕 방법’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강산 관광개발 의정서’를 체결하였다. 그 후 9년 간 이로 인한 협상은 진전을 보이지 않았으나, 민간 기업 회장이 직접 방북하여 금강산 관광 및 자원 개발을 위한 의정서를 북과 함께 체결했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었다.
이주영, “금강산 관광 10주년 관련 자료”, 『나라경제』제10권 제11호 pp. 77-95
이후 1998년 6월 16일부터 23일까지 정주영 명예회장은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통과하여 방북하게 되는데, 이때 ‘금강산관광 및 개발사업 협의, 유람선에 의한 금강산 관광실시 의정서유람선 관광 세부내용 관련 「계약서」를 체결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인영, “금강산 관광과 남북한 협상”, 『협상연구』제6원 제1호
황하수, 「남북교류협력의 현황과 전망」한림대 민족통합연구소 주최한림민족통합포럼발표. 1999년 11월 23일
이주영, “금강산 관광 10주년 관련 자료”, 『나라경제』제10권 제11호'
김난영·조민호, “금강산 관광개발이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공헌도에 대한 연구”, 『관광학연구 』제30권 제3호(통권 55
1989. 2. 1 MBC 뉴스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