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원론 과거 언론사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14.06.20
- 최종 저작일
- 2013.06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1. 서재필과 독립신문
2.. 매일신보, 제주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3. 일장기 말소 사건
4. 장준화, 함석현의 언론활동
5. 민족일보와 조용수 사장 사형
6. 동아일보 백지광고
7.1980년대 언론사 해직사건
본문내용
1.서재필과 독립신문
독립운동가로서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영어명은 제이슨(P.Jason)이다. 전남 보성(寶城)에서 출생했다. 7세 때 서울에 올라와 외숙인 판서(判書) 김성근(金聲根) 밑에서 한학을 배웠고, 1879년(고종 16) 전강(殿講)에 장원하였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교서관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부터 김옥균(金玉均) ·서광범(徐光範) 등 개화인사들과 교유, 1883년 일본의 도쿄 육군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 귀국 후 국왕에게 사관학교의 설립을 진언, 조련국(操鍊局) 사관장이 되었다. 그러나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이 1884년 군대의 통솔권을 장악하고 군대의 훈련을 위해 청나라 장교를 부르자 군에서 쫓겨났다.
1884년 12월 김옥균 ·홍영식(洪英植)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正領官)이 되었으나 정변이 실패하였다.
<중 략>
8명의 언론인들을 다시 구속했다. 언론인강제해직은 1980년 7월 한국 신문·방송·통신협회의 자율정화결의라는 허울로 내세운 대규모 강제해직조치였다. 이 위장된 기상천외의 '자율정화'는 정화조치자 298명, 자체 인사정화자 635명 등 933명을 강제해직한 한국언론사상 최악의 조치였다. 언론인 강제해직은 파행적 정치상황 가운데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려 애썼던 언론인들과 권력 강화에 혈안이 된 신군부 세력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가장 악랄한 언론탄압 정책이었다. 언론은 강제해직은 1980년 11월 14일에 집군부 집권세력에 의한 한국언론의 강압적인 대대적 개편조치인 언론통폐합으로 마무리된다. 이 사건은 이전에 일어났던 보도지침 검열 거부 사건 등 언론탄압 및 왜곡을 정화의 명분으로 정당화시킴과 동시에 광주사태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등 계엄사령부의 검열에 반대한 기자들을 대대적으로 탄합한 사건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