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원소와 손권
- 최초 등록일
- 2003.06.15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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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머리말
Ⅱ. 원소(袁紹)와 손권(孫權)은 누구인가?
Ⅲ.《三國志》속의 袁紹
Ⅳ.《三國志》속의 孫權
Ⅴ. 袁紹의 정치적 약점
Ⅵ. 孫權의 정치적 약점
Ⅶ. 孫權의 장기집권
Ⅷ. 결 론
본문내용
Ⅱ. 원소(袁紹)와 손권(孫權)은 누구인가?
원소(袁紹)는 후한 말 군웅의 한사람으로 자는 본초(本初)이고, 여남군(汝南郡) 여양현(汝陽縣)사람이다. 그의 조부 원안(袁安)은 한나라 조정의 사도를 지냈다. 원안(袁安) 이후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원씨 집안의 세력은 전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명문 귀족이었다. 그를 평해서 '외모에 위용이 있다'라거나 '원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위용이 있어 보이나' 등의 표현이 많이 있다. 이렇듯 그는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에 거의 완벽한 풍도(風度)를 갖춘 인물로 일컬어지고 있으나, 결국 황제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소(袁紹)에 대한 이런 평가는, 단지 원소(袁紹)가 당대의 명문·귀족가에서 태어난 계급적인 위치 상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는 명문가라는 후광을 받아 20세에 지방의 지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러나 중도에 원소(袁紹)는 부모의 상을 당하고 관직을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상복을 벗은 후에도 다시 관직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협들과 교제하면서 자신의 출신 가문을 그리 드러내지 않았고, 누구와도 마음 편이 사귀어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였는데, 이 역시 명문의 후광이라 할 수 있지만, 그의 몸에 지닌 풍도(風度)가 많은 인재를 끌어들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가문적 뒷배경과 정상의 자리에 오를 만한 풍도(風度)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원소(袁紹)는 황하 이북의 관대한 지역을 확보하여 서기 200년 북중국의 패권을 걸고 조조와 대결한 〈관도(官渡)대전〉에서 패해 황제의 자리를 목전에 둔 채 어이없이 자멸한 인물로 남겨졌다.
참고 자료
진수/김원중 옮김. 《三國志》.〈위서〉 권1. 「원소전」. (신원문화사. 1994 ).모리야 히로시/김승일 옮김. 《인물 삼국지》. 범우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