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서원거축,돈암서원,서원의 역사와 건]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 서원
- 최초 등록일
- 2003.06.1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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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왕조는 신유학(新儒學)인 성리학(性理學)을 치국(治國)이념으로 표방하고 등장한 신흥 사대부(士大夫)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건국되었다. 사상과 이념면에서 불교 국가였던 고려왕조와 기반을 달리한 조선왕조는 정치·사회는 물론이고 교육과 의례까지도 성리학으로 근본이념을 삼았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의 사대부들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성리학을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차차 우리 것으로 만들며 꽃을 피워 갔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조선시대의 서원은 성리학의 도통을 이어 나간 향촌의 사림세력에 의하여 성립되었다. 서원제도의 성립은 정치적으로 사회를 겪으며 침체되어 가던 당시조선 사회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은 시대적 산물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받아들인 사대부는 사(士)의 단계에서는 수기하고, 대부의 단계에서는 치인(治人)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본으로 하여 행동한다. 수기는 자기 자신의 인격수양과 학문도야를 하는 것이고 치인은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다스리고 봉사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향리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또 제자를 양성하고 향촌을 교화할 수 있는 서원을 건립해 수기치인의 도학(道學) 이념을 실현하려고 했다.
서원은 기본적으로 유생들이 모여 강당에서 학문하는 강학의 기능과, 사우(祠宇)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祭祀)드리는 제향(祭享)의 기능을 갖춘 곳이다. 하지만 서원(書院)은 이러한 기능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향촌에 사회 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질서를 재편성하며 향촌 지역공동체를 이끌어 간 정신적 지주가 된 곳이었다. 이와 같이 서원은 도학을 이상으로 삼던 사대부 사림세력들의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형성된 것으로서 성리학이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말 성리학자였던 안향의 고향인 경상도 순흥에 그를 기르기 위한 사당을 1542년에 세우고, 그 이듬해인 1543년 사당 앞에 학문을 할 '백운동서원'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후 백운동서원은 퇴계 이황의 노력으로 1550년 국가로부터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이를 효시로 하여 건립된 서원들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아카데미로 공인받으며 연이어 사액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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