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Emile Durkeim] 1858.4 ~ 1917.11.15.
- 최초 등록일
- 2014.03.26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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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뒤르켕의 생애
2. 사회적 배경
3. 뒤르켐의 주요 사상
4. 결론
5. 참고도서
본문내용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에삐날(Epinal)이라는 마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지도자 즉 랍비로써 그 지역 공동체에서 중요한 도덕적 ․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그는 아들 뒤르켕이 자신의 뒤를 이어 유대인들의 랍비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뒤르켕은 유대교의 선생이 되는 훈련과정을 1년간 받았고, 히브리어와 유대교 교리에도 정통했으나, 그 당시 세속화 분위기와 에삐날 중학교에서 세속화된 인본주의 교육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를 포기했다.
뒤르켕은 자신의 마을에서 초 ․ 중등학교 때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평생의 직업으로 일찍부터 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자신의 가정 형편으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안 뒤르켕은 빠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해서 국비로 학업을 지속하기를 원했고 명문 루이 르 그랑(Louis Le Grand)고등학교에서 빠리 고등사범학교 입학 준비를 한다. 뒤르켕은 세 번의 도전 끝에 1879년 드디어 그가 소망하던 빠리 고등사범학교의 입시를 통과한다.
빠리 고등사범학교는 시골 청년 뒤르켕 에게 지적 가능성을 열어준 훈련과 모험의 장소였다. 이 당시 빠리 고등사범학교는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 사회적 사건들을 논의하고 이론적으로 실험하는 장소였다. 여기에서 뒤르켕은 -사회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배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사회이론과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이러한 지적 분위기 속에서 뒤르켕은 자신의 유대교 신앙의 포기에 대한 보상을 다른 분야에 헌신하는 것에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가 찾은 새로운 헌신은 단순한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 이후 크게 몰락해 있던 프랑스를 도덕적으로 재건할 학문적 ․ 정신적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개혁은 도덕적 재건을 통한 정신의 통일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의 새로운 소명은 이 새 도덕을 가르치고 예언하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사회 분업론 - 뒤르켕
자살론 - 뒤르켕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 뒤르켕
뒤르켕의 사상적 배경과 기반 - 강태일, 이순재, 이윤경, 이재민, 조은경
에밀 뒤르케임 - 케내쓰 톰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