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최초 등록일
- 2014.01.27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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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태일의 생애
2.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노동자
3. 전태일이 한국사회에 가져다준 영향
4.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 영화와 한국사회
본문내용
1. 전태일의 생애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생활고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열일곱 나이부터 평화시장 의류제조업체의 재단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대한민국의 산업구조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로 가발, 섬유, 봉제 등의 산업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력을 값 싸게 얻는 것이다. 원료의 가격은 그리 유동적이지 않지만 노동의 가격은 고용주의 손에 달려있고 노동자를 위한 법이 존재했지만 효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던 1960-70년대는 노동자들의 수난기라 할 수 있다. 전태일은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에 피가 끓는 한 명의 청년이자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 자신이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다른 동료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해 항상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에 기인하여 동료 재단사들과 함께 ‘바보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평화시장 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실태를 노동청이나 서울특별시에 알리려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묵살 당했다. 당시 행정부와 경영인들의 유착과 경영인들끼리의 담합도 있었기에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노동자들은 이를 위한 작은 목소리조차도 낼 수 없었다. 이에 전태일은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바보회’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삼동 친목회’를 조직하고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시위를 도모한다. 전태일은 이 시위에서 지켜지지 않는 법을 손에 쥔 체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평전에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병원에 옮겨진 그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되어있다. 2.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노동자
1960년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오면서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초기 경공업 수출 위주의 산업을 육성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