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권-『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3.12.26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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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란 문명 간 변화와 경쟁의 연속이다. 다른 문명보다 먼저 변화하고 이에 적응하는 문명이 살아남는다. 인류 역사의 뿌리를 크게 극동을 중심으로 한 동양과, 유럽 및 북아프리카의 서양 문명 두 가지로 나눈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뿌리가 뻗은 자리에서 큰 나무로 자랐다. 중원·천하 등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농업 등에 필요한 토지가 풍부했기에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만리장성은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동양문명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했다. 반면, 서양의 역사는 팽창의 역사다. 지중해에 둘러져 있어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정치체계에서도 차이는 두드러졌다. 로마의 황제는 제국의 모든 것을 소유하지 못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군대와 합의를 보아야 했고, 승리의 대가로 전리품을 약속해야 했다. 때문에 로마 군단의 지휘관은 한 도시를 점령했을 때 병사들에게 사흘 동안 약탈할 기회를 허용해야했다. 15세기 ‘해상왕’으로 불린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도 자비로 함대를 마련해 동방 무역로를 개척했고, 17세기 영국의 왕 찰스는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의회와 다투다가 결국엔 죽임을 당했다. 실제로 ‘프린켑스(제1시민)’를 자청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처럼 유럽의 황제란 결국 여러 귀족 사이에서 ‘1번’인 자를 의미할 뿐이었다. 같은 귀족이라도 황제를 보필하는 제한적 역할에 머물렀던 중국과는 분명한 차이다.
동양문명이 제자리를 맴돈 데 반해 중동에서 시작한 서양문명은 그리스와 로마, 서유럽 등을 거쳐 이제는 한국과 일본 등에 뿌리를 내렸다. 동양문명은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통치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유럽처럼 피로 피를 씻는 분열의 역사가 없었던 탓에 국가 간 협력이 원활하지 못했다. 삼십 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같은 분열과 치유의 과정을 동아시아도 반복해서 거쳤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가능했을 것이란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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