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4.01.17
- 최종 저작일
- 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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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고대 아테네, 그리고 아테네를 벤치마킹한 고대 로마의 정치체제를 비교해보는 글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도 다루고 있으며, 결코 얕지 않은 깊이를 제공합니다. 대학교 교양 정치학 과목의 레포트로 추천드립니다.
목차
1. 서론
2.1. 플라톤의 이상국가
2.2. 로마 공화정
2.3. 철인국가와 로마 공화정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읽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나온다.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갓 시작한 로마인들이 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기원전 453년에 당시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그리스에 시찰단을 파견한 것이다. 이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아테네가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1년 동안 최고 선진국의 최고 전성기를 직접 경험한 시찰단이 귀국한 뒤에도 로마는 아테네를 모방하지 않았다. 작가는 시찰단이 아테네가 ‘겉모습은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임을 꿰뚫어봤기 때문이라고 봤지만, 로마인들이 이 점을 봤든 보지 못했든 간에 그들은 아테네를 모방하는 대신 자신들 고유의 정치 체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택했고, 얼마 되지 않아 그리스와 카르타고를 대신하는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중 략>
군인의 역할이 중시된 것도 두 체제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보다 스파르타를 높이 평가했고, 이 점이 반영되어 군인국가 모델을 철인국가 다음으로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했다. 플라톤의 구상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함께 교육 받은 이들 사이에서 철인통치자와 군인이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군인은 통치계급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는 것이었다. 로마는 군인을 육성하는 체계적인 교육 제도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지만, 군역을 매우 중시했다. 집정관, 법무관 등의 모든 공직이 군사 제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전시에는 곧바로 총사령관, 군단장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있었고, 민회의 선거구도 전시에 곧바로 백인대로 조직될 수 있는 단위였다. 귀족, 평민 구별 없이 모두가 병역 의무를 부담했기 때문에 원로원 의원이 일반 보병으로 출전하여 전사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