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그는 과연 폭군인가 (업적, 재평가, 개인적견해)
- 최초 등록일
- 2013.10.18
- 최종 저작일
- 2012.10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광해군은 폭군으로 유명하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보면서 그는 과연 폭군으로만 바라봐야하는지, 그에 대한 재평가를 해본다.
목차
Ⅰ. 서론
Ⅱ. 광해군에 대하여
1. 광해군의 생애
2.광해군의 업적
3. 광해군의 폐위- 인조반정
Ⅲ. 광해군에 대한 평가와 생각
본문내용
요즘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등의 여러 나라들과 복잡한 외교관계에 있고, 좋은 외교정책을 펼치는 게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역사상 광해군은 명이 망해가고 청이 부흥하는 시점이세 중립외교, 실리외교를 펼쳐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지켜냈던 임금이다.
하지만 이런 탁월한 외교정책과 같은 업적에 반해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고, 광해군에게는 폭군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반정’이라는 단어는 ‘올바른 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따라서 광해군이 폐위된 사건인 인조반정이라는 말 자체에 광해군 시대는 어지럽고 올바르지 못한 시대라는 것을 암시하므로 광해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담겨있는 것 이다. 역사기록을 보면 인조반정을 성공함으로써 ‘나라를 다시 세운 경사’라고 극찬하고 있고 광해군을 안 좋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사기록은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 담겨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고 광해군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광해군이 살았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광해군의 생애, 업적을 알아보고 그동안의 광해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합당한지, 광해군이 패륜을 자행한 폭군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Ⅱ. 광해군에 대하여
1. 광해군의 생애
광해군은 조선시대 15대 임금(재위 : 1608~1628년)으로 1575년 선조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광해군의 어머니는 공빈 김씨이며 비는 판윤 유자신의 딸이다.
선조의 첫째아들인 임해군이 있었으나 성질이 난폭하고, 총명함이 광해군을 따라가지 못하고 선조에게 적통 왕자가 없어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피난지 평양에서 후궁소생인 광해군을 어쩔 수 없이 세자에 책봉했다. 당시 명나라에게 책봉허락을 받아야했으나 결국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세자로 책봉이 되고 광해군은 권섭국사의 직위를 맡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