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의 '임나의 조' 관계기사의 검토

등록일 2003.01.19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서언
2. ‘임나의 조’관계기사의 사료적 구성
3. 민달기(敏達紀) 4년조의 ‘4읍의 조’기사
4. 추고기 8년조의 신라출병과 6성 할양기사
5. 추고기 18-19 31년조의 임나사 내조기사
6. 대화 2녀조의 ‘‘임나의 조’’ 폐지와 공질기사
7. 결어

본문내용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 23년 춘(春) 정월조에는 "신라가 임나관가(任那官家)를 쳐서 멸망시켰다"라 하여 임나(任那)의 멸망사실을 알렸다.『일본서기』는 일본의 해외출선기관, 이른바 임나일본부와 관련시켜 전설의 시대로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부분을 가야 관계기사로 채우고 있을 만큼 이 지역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가야가 멸망한 후에도 식지 않는다. 왜왕권이 가야 멸망 후에도 가야에 대해 그처럼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은 가야 멸망의 전사가 왜왕권의 지배하에 있던 역사였다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고, 가야의 부흥이 후계왕의 지상의 과제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가야 멸망 이후 왜왕권의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해주는 구체적 사례로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임나(任那)의 조(調)’이다.‘임나의 조’에 대해 스에마츠(末松保和)를 시작으로 하는 종전의 연구는 이를 신라와 왜 사이에 존재했던 역사적 실체로 보고, 그 위에서 사적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왜왕권의 임나지배이다. 그러나 지배의 논리에 의한 사적 해석은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 부정되고 극복되고 있는 요즘의 연구수준으로 볼 때 비판을 가할 수 있다. 스에마츠(末松保和)설 이후 최근에 『일본서기』의 임나 미야케(官家)관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가야 멸망이전의 왜왕권과 가야의 관계, 즉‘임나의 조’가 나오는 대상지인 임나에 대한 왜왕권의 특수 권익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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