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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7.25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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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거리굿의 연희
1. 의식성이 강한 무극
2. 예능성이 강한 무극
3. 놀이적인 무극
4. 무와 관중의 역할이 전도된 무극
5. 민속극
Ⅲ. 마을굿의 연희
Ⅳ. 민속극의 연희
Ⅴ. 박첨지놀이의 연희
1. 박첨지
2. 박첨지 큰마누라
3. 상제
4. 기타 인물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문화의 저층에서 오늘날까지 연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민간연희의 질긴 생명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문화재’ 차원에서 유지 보존되는 가면극 등속을 두고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자생적으로 살아 움직여온 연희, 예컨대 굿놀이[무극]를 두고서 하는 이야기다.
오늘날도 제주도나 동해안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서 민간연희로서 굿놀이가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그 힘이 어디에 있는가는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 생명력이 상당 부분 연희 자체에, 곧 그 예술적 존재방식 내지 ‘연희의 미학’에 의거하고 있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과연 어떠한 자질이 그 생명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인지, 이제 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 략>
탈놀이의 인물들이 원래적 구나적 인물들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통영 오광대를 논 통영 수군의 악공들도 대부분 무계 출신들이었다 한다.
그리고 지방 관아에서 탈놀이 등을 하기도 하고, 꽹가리, 징 등의 타악기를 치며 하던 지방 관아의 구나 의식은 민간 축제의 일종인 정초의 집돌이로 이어졌다.
오늘날 경기 이남의 정초의 집돌이는 대개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된 두레 농악패가 하고 있지만, 경기 이남 지역에서 ‘매귀’ 혹은 ‘지신밟기’라고도 불리는 민간의 정초 집돌이도 원래는 광대 집단에 의해 이뤄졌던 지방 관아의 구나 의식의 연장으로 광대 집단에 의해 이뤄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두레 농악이 없었던 경기 이북 지역은 근대 이후까지도 광대 집단인 재인촌 사람들이 민간에서 정초 집돌이를 하였던 것이다. 원래 악공 집단이었던, 이들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은 전혀 종교적 집단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초에 민간에서 농악을 치며 종교적 의식인 집돌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매년 연말이면 지방 관아에 들어가서 구나를 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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