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체제론에 대한 비판 요지
- 최초 등록일
- 2013.07.24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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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부체제론의 문제점
2. 논지 비판
3. 근거 재해석
4. 새로운 고대사체계
본문내용
1. 부체제론의 문제점
: 부체제론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수정론적 관점에 입각해 있으면서도, 의견 전개에 필요한 텍스트는 별다른 비판 없이 근거로 삼고 있다. 전통적으로 학계의 수정론적 입장이 식민사관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부정론에서 연원한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수정론에 입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사료비판 없이 초기기록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 하여 이론을 전개하는 것은 역사 왜곡일 뿐이다.
- 부체제론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형성 초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미 주변지역을 정복하는 등의 강력한 왕권국가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 없으며, 삼국지 동이전 등의 비교를 통해 삼국시대의 초기국가 형성의 패턴을 읽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에서 파생된 산물인데, 그와 같은 연원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취사선택해서 쓰는 것에 대한 사료 비판이나 관련된 논지 전개가 빈약하리만큼 불충분함.
: 즉 부체제론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의 연장선에 필연적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해 5~6세기 중반까지 신라가 부체제에 기반해 운영되었고, 왕 또한 세력 있는 한 부의 수장으로 각 부의 대표자 회의등을 통한 합의에 의해 움직였을 뿐 집권적 국가를 만들지는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골품제등 전체적인 신라사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서 작용하고 있다.
< 중 략 >
3. 근거 재해석
(1)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에 나오는 왕, 갈문왕(葛文王)의 명칭 옆에 부명(部名)을 병기한 것 : 왕성이 존재했던 곳, 즉 각 왕이나 갈문왕이 거처했던 왕성이 소재했던 왕도의 행정구역을 병기한 것일 뿐이다. 신라왕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 전체를 다스리는 지배자이지 각 부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종로구에 위치한 청와대에 거주하는 대통령을 종로구청장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