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전기중세국어
- 최초 등록일
- 2013.06.19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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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세국어의 성립
2. 저층
3. 표기법
4. 음운
6. 어휘
본문내용
중세국어의 시기는 10세기에서 16세기까지 7세기 동안에 걸친다. 그리고 이 시기는 14세기를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양분된다. 전기 중세국어의 시기는 대체로 고려 왕조에 해당하며 후기 중세국어의 시기는 조선 왕조의 처음 200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전기 중세국어는 주로 한자로 표기된 자료에 의하여, 후기 중세국어는 주로 훈민정음 자료에 의하여 표기된다.
그러나 왕조의 변혁이나 훈민정음의 창제가 이 하위구분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훈민정음은 어디까지나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 체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 출현이 국어의 음운, 문법, 어휘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다.
국어사의 중세 단계를 전기와 후기로 양분하는 것은 14세기에 그 음운체계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 모음체계에 있어서의 변화는 현저한 바 있다.
제1절 중세국어의 성립
10세기 초에 고려 왕조가 서고 개경(개성)이 정치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가 됨에 따라 그 방언이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에 이 방언을 토대로 우리 나라의 새로운 중앙어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 중앙어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계속되고 있으니 그 성립은 국어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10세기 개경에서 신라어의 한 방언이 말해졌으며 그 토대 위에서 고려 중앙어(중세국어)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언어를 말하던 사람들이 그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게 되는 경우에, 예전 언어의 어떤 특징을 새로운 언어를 말할 때도 버리지 못한다. 이 예전 언어를 저층이라 하는데, 신라어의 개경 방언에는 많건 적건 고구려어의 저층이 있었을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개경 방언의 어휘에는 고구려어의 요소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예: 고구려어 나믈 乃勿 = 13세기 那勿(나?), 고구려어 呑, 旦, 頓 =조선관역어의 村, 呑
그런데 위의 두 예가 다 조만간 손실되고 만 사실이 주목된다. 15세기 정음 문헌에 보면 鉛, 村을 가리키는 단어는 각각 ‘납’, ‘?’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