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법제사] 법전논쟁

등록일 2002.12.20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300원

소개글

법전논쟁에 대하여 간단한 정리

목차

없음

본문내용

프로이센의 일반주법을 비롯한 여러 지방법전은 지방특별법이어서 법은 분열상태에 있었다. 그리하여 1814년에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1871년에 프로이센은 독일연방제국을 조직하였는데, 1814년에 독일이 나폴레옹의 압정에서 해방되고, 계수된 로마법은 당시에 일어난 민족적 통일운동과 역행하여 17,18세기에는 통일법전의 편찬이 촉구 되었다. 그래서 Heidelberg대학의 교수인 Anton Thibaut(1772-1840)는 자연법에 입각하여 「독일을 위한 일반민법전의 필요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전독일에 적용되는 통일민법전을 제정하는 것이 독일의 통일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Berlin 대학 교수인 Savigny는 같은 해에 「입법 및 법률학에 대한 현대의 사명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발표하여 이에 반대하였다. 이 저작은 역사법학의 근본사상을 전개한 획기적인 저작이다. 거기에서 Savigny는 자연법에 반대하고, 역사주의에 입각하여 법은 언어처럼 자연히 성립·발전하는 것이며, 법률학이 발달하지 않고 적당한 법률용어도 없을 때에 입법을 강행하면 민족의식을 대표하지 않는 불완전한 법률이 되며, 도리어 법이 자연의 발달을 방해한다고 하여 반대하였다. 이 논쟁을 Savigny·Thibaut의 법전논쟁이라고 한다. Savigny가 Thibaut와의 법전논쟁에서 승리를 하였다. 이로 인하여 편찬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다시 수십년이 더 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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