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개신정권의 성립과 동아시아 외교
- 최초 등록일
- 2002.12.16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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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고대사 자료입니다...
목차
1. 서언
2. 을사의 정변과 개신정권의 성립
3. 동아시아 외교의 전개
4. 균형외교의 파탄과 백제중심노선의 선택
5. 결어
본문내용
개신정권의 수립후 왜왕권의 수뇌부는 대외관계에 있어 외교노선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종전에 개신정권의 외교노선은 ① 소아씨에 의한 친백제노선으로부터 중대형-중신겸족 등에 의한 친신라노선으로 전환했다는 이시모다설 ② 조정 내부의 대립되는 2개의 권력인 친백제파와 친신라·친당파에 의한 이원적 분열외교로 보는 야기설 ③ 대립하는 신라·백제의 균형 위에 양국으로부터 조공관계를 유지하여 공납수령(貢納受領)체제를 온존시킨다는 키토설 ④ 대화연간의 일본·신라·당의 3국연합체제로부터 백치(白雉)연간에는 신라·백제에 대한 등거리외교로 전환했다는 김현구설 ⑤ 642년 이래 일관된 친백제책을 취했다는 니시모토설등이 제기 되었다. ①설에서는 친신라노선에서 백촌강(白村江)전투에 참전한 이유가 계기가 분명치 않고, ②설에서는 중대형 권력체제하에서의 국가적 분열외교를 상정하기 어렵고, ③설에서는 신라·백제를 조공국으로 보는 관점에 동의하기 어려우며, ④설에서는 대화 연간에 개신정권과 백제가 단교한 상태였다고 보는 점을 수긍하기 어렵고, ⑤설에서는 사료상으로 개신정권 성립 이후 친신라·친당책이 확인되고 있는 점에서 문제점이 남는다. 당시 동아시아 정국은 고구려-백제와 당-신라의 세력이 대립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왜왕권이 전통적 외교방식인 친백제 일변도의 노선에서 탈피하여 외교의 다면화를 추구한 것은 통일왕조 중국에 대한 동경과 경외감 때문으로 생각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