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십이곡
- 최초 등록일
- 2002.12.11
- 최종 저작일
- 2002.12
- 4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陶山老人)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시조를 지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와(음탕)하여 족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 '한림별곡'과 같은 류는 문인의 구기(口氣)에서 나왔지만 긍호(矜豪)와 방탕에다 설만(褻慢)과 희압(戱狎)을 겸하여 더욱이 군자로서 숭상할 바 못 되고, 다만 근세에 이별(李鼈)이 지은 '육가(六歌)'란 것이 있어서 세상에 많이들 전한다. 오히려 저것(육가)이 이것(한림별곡)보다 나을 듯하나, 역시 그 중에는 완세 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 돈후 (溫柔敦厚)의 실(實)이 적은 것이 애석한 일이다.
'도산십이곡'을 짓게 된 이유
노인이 본디 음률을 잘 모르기는 하나, 오히려 세속적인 음악을 듣기에는 싫어하였으므로, 한가한 곳에서 병을 수양하는 나머지에 무릇 느낀 바 있으면 문득 시로써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을을 수는 있겠으나, 노래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만일에 노래를 부른다면 반드시 이속(俚俗)의 말로써 지어야 할 것이니, 이는 대체로 우리 국속(國俗)의 음절이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산십이곡'이 국문인 까닭
그러기에 내가 일찍이 이별의 노래를 대략 모방하여 '도산 육곡'을 지은 것이 둘이니, 기 일(其一)에는 '지(志)'를 말하였고, 기 이(其二)에는 '학(學)'을 말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