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의 해석
- 최초 등록일
- 2013.01.21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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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황조가의 해석-한국 문학사의 쟁점
목차
1. 현전하는 작품이 위작인가 한역인가
2. 황조가의 작자가 과연 유리왕인가
3. 황조가의 창작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
4. 황조가가 서정시인가 서사시인가
본문내용
《三國史記》권 13高句麗 本記 琉璃王 3年條의 말미에 수록된 黃鳥歌는 그 기록 자체만을 따른다면 公無渡河歌, 龜旨歌와 더불어 국문학사에 있어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시가들 중의 하나가 된다. 따라서 고대문학의 매우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지만 과연 삼국사기의 문면에 나타난 기사를 모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황조가의 작품 해석은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되어 왔다. 우선 한문의 본격적인 수용을 소수림왕(B.C. 4세기) 무렵으로 추정하고 보면 현재와 같은 4언4구 詩經體의 황조가가 과연 유리왕 때에 창작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서 현전하는 작품이 僞作인가 漢譯인가 하는 문제와 작자가 과연 유리왕인가 아닌가, 아울러 그 창작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것이 논란되었다.
① 현전하는 작품이 위작인가 한역인가
《韓國漢文學史》에서는 황조가를 현전하는 漢文學의 最古 작품으로 인정하고, 유리왕이 그 작자임에 의문을 제시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실을 회의하지 않고 존중한 데서 나온 것인바, 고구려 건국 초부터의 한자 사용 가능성 및 유리왕의 한시 창작 능력 등을 전제한 데서 나온 견해이기도 하다. 한편 이와 반대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신빙하지 않고 후인 위작으로 간주한 고창옥은 국문학의 범위에서 황조가를 제외시켰으며, 우리어문학회의 《國文學史》 역시 서술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論者들은 삼국사기의 기록 자체를 존중하면서도 비판으로 검토하여 현재의 한시 자체는 후인의 僞作 또는 漢譯으로 간주하되 原作 자체의 존재 가능성만은 인정하여 국문학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즉 현재의 황조가는 원래 우리말로 창작되어 불려지던 것이 口傳되어 훨씬 후대에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현재의 한시 형태로 번역, 정착되었고, 다시 이것이 삼국사기에 수록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러한 입장의 論據는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한문의 본격적인 수용이 유리왕 때보다 4세기 가량 후대인 소수림왕 때라는 일반적인 사실과 삼국사기에 표기된 유리왕 시대의 人名, 地名이 대개 순수한 고구려 토속어의 발음과 뜻을 한자로 假借表記한 사실들을 들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