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의미와 한국전쟁기 학살 문제에 대해 서술하기.
- 최초 등록일
- 2013.01.04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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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의미와 한국전쟁기 학살 문제에 대해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의미
2. 한국전쟁기의 학살 문제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이 포츠담선언에서 제시한 무조건항복을 수락하겠다는 일왕 히로히토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일제가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민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가득 찬 기쁨으로 해방을 축하하였다. 그들은 어제까지 입었던 국민복과 몸빼를 벗어던지고 여러 빛깔의 우리 옷을 입고 연일 거리를 가득 메웠다. 해방의 환희와 함께 새 조국을 건설하려는 움직임도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이 강산은 들떴지만 결코 혼란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국재건을 일구는 열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8ㆍ15 해방의 기쁨 뒤에는 전혀 다른 민족의 불행이 도사리고 있었다.
<중 략>
8ㆍ15해방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가 종결되고 완전 식민지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만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획득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나, 바로 그 시점부터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달리 하는 미ㆍ소의 두 나라가 한국을 분할 점령함으로써 한국은 분단시대가 시작되었다. 38도선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미ㆍ소 양군이 나누어 맡는다는 군사적 목적에서 그어졌으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체제의 모순이 냉전으로 심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미소 냉전 구조의 최전선으로 전환될 개연성을 애초부터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은 이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중 략>
이상과 같이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의미와 한국전쟁기 학살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 민족은 8ㆍ15해방을 맞이하였지만, 이는 분명 불완전한 해방이었고 이와 연계해 발발한 한국전쟁기에는 잊을 수 없는 학살이라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한국전쟁 전후 학살은 냉전체제 형성기에 발생한 전형적인 학살로서 여타의 학살과는 차별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근대화된 국가권력에 의해 매우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의도적으로 자행한 나치 하의 유태인 대학살과는 성격이 다르고 탈냉전기의 보스니아, 코소보, 르완다 등의 인종 분쟁에서 나타난 거처럼 특정 인종이 타 인종을 청소한 사회적 학살과도 엄연히 다르다.
참고 자료
문혜경,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소, 2008
김호일, “8ㆍ15해방의 역사적 의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