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미인도를 통해 본 조선후기 복식
- 최초 등록일
- 2012.12.04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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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미인도를 통해서 조선후기의 여성복식을 알아보고
미인도의 여성 복식을 장신구와 헤어까지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 입니다.
그림은 미인도 뿐만아니라 신윤복의 그림 여러점 추가해서 글에 많은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복식사 쪽에 도움이 많이 될거같네요 총9장입니다.
목차
1. 조선후기의 여성복식
2. 신윤복과 미인도를 주제로 한 드라마와 영화
본문내용
조선후기의 복식 변화는
실학의 대두로 인한 사상적 변화와 함께 그 형태면에서 고유의 양식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실용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간소화, 단순화가 이루어졌으며 엄격한 신분제도의 붕괴는 신분에 따른 의복제약에서 의복의 심리적인 미적욕구를 충족시키는 추세로 발전되었다.
이는 그 시대에 나타난 풍속화에 사실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풍속화 속의 그림에 나타난 복식도 그 시대의 사회상을 나타내듯이 실용적이며, 그 시대의 풍조를 보여주고 착장방식을 짐작케 한다.
저고리는 전시대에 비해 길이가 짥아지고 품과 소매통이 좁아져 단소화되고, 치마는 길이가 길어지고 폭도 풍성해지는 장대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짧아진 저고리로 인해 가슴을 가리기 위한 가리개용 허리띠도 생겨났다. 삼회장 저고리는 양반층에서만 착용하게 되어 있었는데, 풍속화에 보여 지듯이 기녀층에서도 착용되고 있는 모습에서 상층계급을 향한 신분상승의 욕구가 복식을 통해 표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풍속화에 나타난 머리모양과 복식으로 확실하게 신분, 직업 등을 구별하기가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치마는 여미는 방향을 달리하여 계층 간의 신분을 표시하기도 하였는데, 양반층은 기녀와 치마의 형태는 같더라도 여밈 방향을 왼쪽으로 하고, 기녀와 서민층은 오른쪽으로 하였다. 그러나 풍속화에서는 이에 위반하는 경우가 많아 일률적으로 규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풍속화에 나타난 여인들은 모두 바지 위에 치마를 입고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바지 위에 치마를 입는 것이 일반화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바지를 치마 안에 입는 속옷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보여지는 기녀들과 양반부녀자들의 바지는 하류층에 비해 상당히 관활한데, 이는 치마의 부풀림과 상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녀들은 치마의 실루엣을 풍만하게 하기 위해 속옷을 여러 겹 끼워 입어 많을 경우에는 10여 가지의 속옷을 입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가체를 사용한 거대한 트레머리 일색으로 트레머리에 댕기나 비녀, 떨잠 등의 장식을 더하고 다양한 머리의 연출로서 멋을 부린 것을 보아 조선 후기 여성들의 머리 모양에 대한 투자와 애정 또한 대단하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