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ITF(국제 테니스 연맹)와 우리나라 테니스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2.10.30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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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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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ITF(국제 테니스 연맹)
2. 우리나라 테니스의 역사
[1] Websites :
[2] Electronic Papers :
본문내용
ITF는 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국제 테니스 연맹)의 약어로 현재 205개 국가의 테니스 협회로 구성되어 세계 테니스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중심 조직이자 최고 기구이다.
직접적으로 테니스 경기를 운영·통제하고 국제 경기·국제 순회경기를 관장하며 테니스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한다. 올림픽 경기와 그랜드 슬램(Grand Slam)에 관여하고 있는데, 그랜드 슬램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윔블던(Wimbledon), 롤랜드 개러스(Rolland Garros), 유에스(US) 오픈, 이 네 경기가 있다.
현대 테니스의 기원
현대 테니스의 기원은 두 갈래로 나뉜다. 1859~1865년 사이에 해리 젬(Harry Gem) 장군과 그의 친구였던 오구리오 페레라(Augurio Perera)는 바스크 전통 공놀이의 일종인 펠로타에 라켓을 접목시킨 새로운 구기를 고안하여 영국 버밍햄의 크로케 구장에서 즐겼다. 1884년 7월 23일에는 슈러블랜드 홀(Shrubland Hall)에서 열린 최초의 테니스 대회 경기 모습이 녹화되기도 했다.
한편, 1873년 12월 월터 윙필드 장군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경기를 고안하였다. 그는 이 경기를 스페어리스티크(그리스어: `공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뜻)라고 명명했으며, 이것은 이후 좀더 간단하게 `스티키(stick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이 경기를 웨일즈의 라넬리던(Llanelidan)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가든 파티를 열 때마다 손님들의 오락을 위해 활용하였다. 그가 고안한 경기는 좀 더 현대적인 스포츠인 실외 테니스나 리얼 테니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대 테니스의 관련 용어들이 이 시기에 윙필드 장군이 실내 테니스의 명칭 및 관련 프랑스어 어휘들을 차용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11세기 무렵 이탈리아·그리스 등의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와 페르시아에서 귀족·성직자들이 행하였던 실내경기의 일종이 그 기원이라고 하나 분명하지는 않다. 경기방법은 실내의 정해진 벽에 경기자가 볼을 치고, 되돌아오는 볼을 상대방이 되받아치는 것을 반목하여 승패를 겨루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나중에는 한번 바운드된 볼을 되받아치는 룰도 시행되어 타자와 되받아치는 자 사이에 높은 네트가 쳐졌다. 볼은 머리털을 말아서 모피로 씌운 것이었는데, 볼 제조법이 발전됨에 따라 경기법도 바뀌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Websites :
‘국제테니스연맹의 역할’, http://kr.dictionary.search.yahoo.com/search/diction aryp?&p=%EA%B5%AD%EC%A0%9C+%ED%
5%8C%EB%8B%88%EC%8A%A4+%EC%97%B0%EB%A7%B9&subtype=enc&pk=19316200&field=id
`우리나라 테니스와 ITF`, http://100.naver.com/100.nhn?docid=23012
‘국제테니스연맹의 역할’, http://ko.wikipedia.org/wiki/%EA%B5%AD%EC% A0%9C_%ED%85%8C%EB%8B
‘국제테니스연맹’, http://logencyber.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 &gd=&cd=&k=&inqr=&indme=&p=1&masterno=23012&contentno=23012
Electronic Papers :
“우리나라 테니스의 역사” http://blog.naver.com/bodigar?Redirect=Log&logNo=40043091818
“테니스의 역사” http://blog.naver.com/bodigar?Redirect=Log&logNo=4004309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