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남여 복식의 유행
- 최초 등록일
- 2012.08.30
- 최종 저작일
- 2011.11
- 3페이지/ MS 워드
- 가격 2,500원
소개글
조선시대의 남여 복식이 어떠한 소재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등의 총체적인 복식의 유행의 변화를 조사한 레포트
목차
1 .여성 의복
2 . 남성 의복
본문내용
유행 했던 저고리의 형태를 자세하게 보면 꽉끼는 소매, 젖가슴이 보일 정도의 짧은 길이가 특징이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입는 옷이 일을 해야 하는 하층에게도 유행하였는데, 유행이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는 증거가 된다.
젖가슴이 보일 정도로 짧은 저고리 때문에 양반은 짧은 저고리 아래 긴 띠를 둘러 가렸다.
하지만 가난한 백성들은 그냥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는데, 이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짧은 저고리와 더불어 그 아래 매는 띠나 색상 역시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다.
유행 했던 치마의 특징은 점점 풍성 해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겹겹이 속옷을 입거나, 치마를 여려 겹으로 겹쳐 입었다. 오직 풍성해 보이기 위하여.
그리고 나서 안팎으로 노리개로 멋을 내기도 하였다.
치마 저고리 외에 머리에 쓰는 가채도 유행을 하였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사회의 조선시대에는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여겼다.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가체는 매우 값비쌌다.
형태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었고, 이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가채가 너무 무거워 목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조선정부는 가채 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중략>
상의: 유->저고리로 바뀌어 정착.
**유: 태권도 복처럼 허리아래 까지 오는 긴 웃옷 여밈 띠
길이가 짧아져 허리 위로 올라가고 고름이 생김->조선 초기 등장 저고리. 가설이 많은데 그 중 조선 초기 상경농법으로 경작지가 넓어짐에 따라 노동력 이 많은게 가장 필요한 것. 그래서 옷이 짧아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