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
- 최초 등록일
- 2012.07.03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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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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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신분석이론은 20세기 초 비엔나의 신경과 의사인 프로이드에게서 비롯되었다.
학설이 처음부터 가설에서 출발한 것이고 과학적인 입증(立證)이 불가능한 것이어서 감히 정신분석학이라는 학(學)자를 넣지 못하였다.
프로이드는 프랑스의 신경과 의사인 샤르코의 밑에서 일하면서, 암시를 이용하여 최면술로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것을 배웠고, 1886년 비엔나의 브로이어(Breuer)에게 가서 함께 일하면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통하여 증상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하였 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인간에게 있어서 성적 갈등이 히스테리의 주요원인이라고 느끼 기 시작하면서 브로이어와 결별하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히스테리 환자들이 증세와 관련된 억압된 감정을 기억해내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저항(resistance)이라고 불렀고, 이런 저항은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능동적인 억압(repression)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면술을 쓰는 일은 결함이 있다고 보았으며 대신 자유연상법(自由聯想法)으로 환자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얘기하게 하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1896년 그는 이런 방식을 정신분석이라고 명명했다.
노이로제의 치료에서 얻은 지견을 꿈, 남 앞에서 빗나간 말을 하는 것을 농담이라는 형식으로 방출시키는 속마음 등을 연구하여 1900년 이후 자기 나름의 심리학 체계를 세우고 이를 정신분석이라고 불렀다.
프로이드는 히스테리증상의 원인으로 성적인 것이 퍽 많음을 알아내고 억압된 관념에는 성적인 것이 많을 뿐더러 성적인 것은 아이 때부터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1905년 <성(性)의 이론에 관한 3개의 논문>이라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성에 대한 관념을 확대하여 노이로제의 원인으로서 그전같이 감정적인 상처를 입은 일을 생각하는 대신에 성적인 소질의 역할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프로이드 학설이 범성론적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의 유력한 협조자였던 A.아들러와 K.융 같은 우수한 학자들이 그의 옆을 떠나고 말았다.
: 아들러 - 권력의지(權力意志)를 인간행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아(自我)의 문제에 주목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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