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매스미디어의 발전과정
- 최초 등록일
- 2002.10.19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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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화기의 언론(1883-1900년)
2. 개화기의 언론(1900 - 1910년)
3. 일제하의 언론
4. 미군정하의 언론
5. 이승만 정권하의 언론
6. 민주당 정권하의 언론
7.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1961 - 1972년)
8.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1972-1979년)
9. 전두환 정권하의 언론
10. 노태우 정권하의 언론
11. 김영삼 정권하의 언론
본문내용
1.개화기의 언론(1883-1900년)
우리 나라 신문의 역사는 조보(朝報)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보는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주로 조정의 소식을 필사하여 양반 관료들에게 반포한 것으로, 조선조 초기에서 1895년까지 발행된 일종의 관보이다. 그러나 조보는 오늘날의 신문과는 큰 거리가 있어 현대적 의미의 신문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신문>으로 일컬어지는 한성순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성순보는 1883년 10월 31일에 창간돼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되기까지 총 41호가 발간된 신문이다. 한성 순보는 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가 일본의 신문을 보고 돌아와 만든 것으로, 당시 조선은 일본과의 수호 통상 조약(1876년)을 시발로 미국, 독일, 러시아 등과의 나라들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 문을 열고 있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성순보는 이른바 개화파들의 개혁 작업의 도구로 구상돼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한성 순보의 운명은 곧 개화파의 운명이기도 했다. 김옥균, 박영효 등이 주도한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게 되자 이들이 세운 박문국과 신문 시설이 소실되었고 한성순보도 폐간의 운명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한성순보에 뒤이어 나타난 신문이 한성주보이다. 한성주보는 1886년 1월 25일에 창간돼 1888년 7월 14일 박문국의 폐지와 함께 사라진 신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