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울진 봉평비에 나타난 신라시대 정치와 사회
- 최초 등록일
- 2002.10.13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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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봉평비의 발견과 내용
3. 봉평비에 나타난 신라시대 정치, 사회
4. 봉평비에 나타난 신라史의 이해
5. 결론
본문내용
1.머리말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비석은 모두 스무개 정도이다. 대부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거나 국가적인 의미가 있는 지역에 세워져 있다.
2001년 4월 안동대 사학과 답사는 울진의 신라 봉평비를 찾았다. 그 당시에 난 신라 봉평비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나 봉평비에 대한 리포트를 쓰려고 봉평비를 조사해 보니 비(碑)는 신라가 강대국으로 뻗어갈수 있는 암호 공식화같이 집약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에서 발견된 이 낡은 비석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높이가 2미터 4센티라고 하니까, 현재 남아있는 신라 비석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1500년 전, 신라인들은 왜 이 비석을 세웠을까?
비석에 새겨져 있는 398자, 여기에는 우리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고대사의 많은 비밀들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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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봉평신라비는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신라의 비석으로 국보 제 242호에 지정되었다. 1988년 1월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의 논에서 객토작업을 하던 중에 포크레인으로 다리 밑에다 옮겨 버렸던 것이었는데,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권대선씨가 돌이 잘 생겼기에 정원석으로 쓸까해서 들여다보니 장대석 한 쪽 면에 희미하게 글씨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심상치않은 느낌에 마을 노인들께도 보이고 군 공보실에 연락해 사람들이 다녀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냥 누군가가 낙서한 것처럼 보여 주목을 끌지 못하고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군 문화재 계장과 향토 사가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신라 법흥왕 11년에 세워진 신라 고비(古碑)임이 판명되었다.
참고 자료
삼국시대 왕의 통치형태 연구 / 김영하 저.
발 행 사 항 서울 : 고려대학교, 1988.
삼국의 흥망과 통일 김정환 저.
도서출판 푸른 숲 1996
역사 스페셜 2 정종목
효형출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