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_혼인제의_운영과_변천
- 최초 등록일
- 2011.05.0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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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혼인제도 발표 요약본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려전기 혼인의 조건과 절차
2. 거주에 대한 규정
3. 고려후기의 혼인제 변화와 성격
Ⅲ. 결론
본문내용
고려시대 혼인제의 운영과 변천
Ⅰ. 서론
고려가 918년 태조 왕건에 의해 건국되면서 문물과 제도를 서서히 정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법제와 관료제, 경제체제, 과거제 등 많은 제도들이 시간이 가면서 변화하고 확산되듯이 고려의 혼인제도도 시간이 갈수록 많은 변천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정해진 규제 내에서 지위에 관계없이 자유연애를 하며 결혼을 하는 반면 고려시대에는 혼인에 대한 규제가 엄격했었다. 이제 이러한 혼인에 대한 규제와 운영 변천등을 살펴 볼 것이다.
Ⅱ. 본론
1. 고려전기 혼인의 조건과 절차
1.1. 혼인의 대상
* 동성근친혼에 대한 규정
통일 신라시대에는 골품제도의 영향으로 동성근친혼 금지가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려가 건국되고 골품제도가 붕괴지면서 어느정도는 동성근친혼에 대한 규정이 마련될 수있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습속을 일거에 벗어버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고려초에는 동성금친혼, 족내혼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태조는 자신의 딸 열 명 중 경순왕 김부에게 시집보낸 두 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복남매끼리 결혼시켰다. 태조는 자신의 아들 昭(광종)흫 이복누이인 大穆王后 皇甫氏와 혼인시켰다.(『高麗史』 권88, 列傳1 后妃 光宗大穆王后 皇甫氏.) 또 神明王太后 劉氏소생 興芳公主는 元莊太子와 혼인했고 貞德王后 柳氏 소생 文惠王后는 文元大王 貞에게 시집갔다. 역시 정덕왕후 소생인 宣義王后도 경
이는 왕실 내의 세력을 분산을 막기 위한 의도이다. 혜종은 딸을 아우 소의 아내로 삼는 한편 왕씨라는 성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의 성을 따라 황보씨라고 칭하였다. 그후에도 고려의 왕들은 왕비 중의 한 명을 종실에서 맞는 것을 관례화하였으며, 특히 공주들은 거의 종실 내에서만 배필을 구하였다.
참고 자료
권순영, <고려의 혼인제와 여성의 삶>, 혜안, 2006.
장병인, <조선전기 혼인제와 성차별>, 일지사, 1997.
역사문제연구소, <우리역사의 7가지 풍경>, 역사비평사, 1999.
이배용 외,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청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