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과 폭력(`근대를 다시 읽는다`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1.05.02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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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사 시간에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 중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제 사견을 덧붙였으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머리말
2. 근대성의 기념비적 역사
3. 생존자의 조각난 기억
4. 43 위령제 - 기념비적 재현
5. 43의 명칭의 의미 - 이념적 폭력과 희생
6. 사건의 진실과 재현의 한계
7. ‘용서와 화합’ - 망각의 기만적 가면
8. “죽은 영혼의 울음” - 진정한 애도의례
본문내용
1. 머리말
지금까지 밝혀진 역사적 사실을 요약해보면 제주 4․3사건은 조국통일과 완전독립을 위하여 단정선거를 거부하고 미군정에 저항하는 제주민중의 무장투쟁으로 시작하였으나 1948년 남한 정부가 수립되면서 군대와 경찰력의 반공주의에 입각한 초토화 작전으로 양민이 대량으로 학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4․3의 참상이 근대적 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의 산물이었으며, 지난 50년간 그 폭력의 진실이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어 왔다고 전제하고 있다. 즉, 4․3의 역사적 진실은 국가폭력의 진실성을 해명하는 데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4․3에 대한 담론정치는 폭력적 행위자의 담론에 의해 지배되어왔다. 이 글에서는 그 동안의 지배적 담론과 달리 희생자의 입장에서 폭력의 부당성을 고발하며 희생의 고통 그 자체를 증언함으로써, 폭력에 저항하는 담론으로서 무속적 증언이나 진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중 략>
5. 4․3의 명칭의 의미 - 이념적 폭력과 희생
4․3의 역사적 성격 규명에 대한 혼란과 오류는 4․3을 공산주의 반란 혹은 폭동으로 보는 입장과, 4․3을 미군정과 같은 외세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추구한 민중항쟁이라고 보는 입장 공산 폭동론은 희생자 가운데 군경 유가족과 소위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한 우익인사의 가족을 중심으로, 1988년 10월에 조직된 ‘4․ 3사건 민간인 희생자 반공유족회’에서 주장되어왔고, 민중항쟁론은 4․ 3연구소를 중심으로 결성된 진보단체인 ‘사월제 공동준비위원회(공준위)’를 중심으로 주장되어왔다.
사이의 담론적 대결에 기인한다.
두 입장사이의 갈등은 4․3 위령제의 봉행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나타났다. 1991년 추도 의례는 두 단체에 의해 각기 명칭을 달리하여 봉행되다가, 1994년 도의회의 중재와 재정적 후원을 받아 ‘도민화합을 위한 범도민 행사’로 ‘4․3 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처음으로 봉행되었다. 그러나 서로 ‘폭동’이나 ‘항쟁’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가까스로 합동 위령제가 봉행되는 등 매년 합동 위령제 봉행위원회가 구성될 때 마다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