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10.12.21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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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미술사 과목 기말고사 보고서 입니다.
수업시간 때 들은 내용과 최완수 선생님이 적으신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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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농업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리스에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상업세력이 크게 성장하여 인류문명 사상 최초의 상업문명을 형성해 가는 시기에, 농업문명이 발달해 있었던 인도에서도 상업세력의 발전으로 새로운 혁신이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 속에서 석가모니는 평등과 금욕을 내세우며 상업세력을 지지하는 불교를 확립하였고, 일반의 지지를 얻으며 불교는 교세를 확장해 나가게 된다. 고대 불교 미술에 불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교의 지도자 석가모니는 선각자이자 성인일 뿐이며, 농경사회였던 인도에서 신은 대자연이었으므로 인격신상이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불교 미술의 시원은 열광적인 불교신자였던 아소카왕이 각처에 세운 기념주이다. 이 기념주에는 인도 본연의 과장성과 페르시아 영향의 사실성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아소카왕 이후 불교는 교세 확장에 힘입어 교조인 석가모니를 신격화할 수 있는 상징물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때부터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 고대 불교 미술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탑에는 본생도와 불전도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석가모니를 인격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기하던 당시 전통에 따라 석가모니를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를 불상 불표현의 시대라고 한다. 한편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과 한무제의 확장정책은 인도인들의 인도 중심 세계관을 뒤바꿔 놓았다. 그 결과 1세기 경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 대승사상이 출현하였는데, 이 지역에서는 이러한 대승이념을 기반으로 불상 불표현의 전통을 깨뜨리고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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