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항쟁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0.12.20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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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그 동안 10월 항쟁은 좌우 이념의 대립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로서 일정한 연구결과가 도출되지 못한 사건이었다. 얼마없는 자료와 지금까지의 나온 서적과 논문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 민중들과, 민중들에게 중요했던 식량과 토지문제를 중심으로 사건을 다뤄보겠으며 세부적인 부분보다 전체적인 줄기를 잡아나감으로써 사건을 파악해보자고 한다.
목차
[1] 서 론
(1)미군정의 성격
[2] 본 론
(1)미군정의 농업 농민 정책
1)미군정 농민 토지 정책
2)3·1제와 미곡공출제, 토지개혁
(2)10월 항쟁의 전개
1)전국농민조합총동맹
2)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
[3] 결 론
(1)10월 항쟁의 결과
(2)10월 항쟁의 성격
(3)10월 항쟁의 의의
(4)10월 항쟁의 한계
본문내용
<머릿말>
그 동안 10월 항쟁은 좌우 이념의 대립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로서 일정한 연구결과가 도출되지 못한 사건이었다. 얼마없는 자료와 지금까지의 나온 서적과 논문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 민중들과, 민중들에게 중요했던 식량과 토지문제를 중심으로 사건을 다뤄보겠으며 세부적인 부분보다 전체적인 줄기를 잡아나감으로써 사건을 파악해보자고 한다.
[1] 서 론
(1)미군정의 성격
10월 항쟁을 아는데 있어 당시 시대상황을 아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10월 항쟁 당시 한국을 통치하던 미군정의 성격을 알아봄으로써 10월 항쟁이 일어난 원인과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미군정은 과도적인 국가기구의 성격을 지닌채 한국을 점령한 점령군이었다. 여기서 점령군이라는 것은 미군정이 당시의 한국사회를 기본적으로 패배한 일본사회의 일부분으로 파악하고, 따라서 전쟁에 패한 국가의 영토의 일정지역을 지배하는 형태로 한국에 진주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령군으로서의 미군정의 성격은 미군정 진주 당시의 일부 대표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던 제반 법령이나 명령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우선 1945년 9월 7일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맥아더 사령관의 이름으로 발령된 포고령 제 1 호를 보면, ‘전승군’은 금일 북위 38선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한다고 거의 직설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또한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38선 이남의 조선지역 및 동지역의 주민에 대한 일체의 행정권은 당분간 나(맥아더)의 권한하에 둔다”(제1조)라든가, “일체의 주민은 나 및 나의 권한으로 발령된 명령에 대해 신속히 ‘복종’할 것”(제3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9월 9일에 발령된 하지 사령관의 성명에서도 “나의 지휘하에 있는 제군(조선 국민)은 연합국군 사령관의 명령 및 그 지휘 하에 발하는 나의 명령을 ‘엄격히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군정의 성격은 독립국가를 세우고자한 정치지도자들과 대다수의 민중들의 뜻과 어긋나는
참고 자료
『해방전후사의 인식3』 박현체 외 10명, 한길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대한민국 50년사』 임영태, 들녘
<10월인민항쟁의 전개과정과 성격에 관한 한 연구> 정해구, 1989
<대구 10월 민중항쟁의 진상> 정해구, 1989
『대구10월항쟁연구』, 심지연, 청계연구소
『10월인민항쟁연구』, 정해구, 열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