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의 해외마케팅 성공사례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12.07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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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난타의 해외마케팅 성공사례 분석
목차
1. 한국 뮤지컬 산업의 어제와 오늘
-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옵서예"부터 "On Air"에 이르기 까지
2. 난타의 성공요인과 해외 작품의 비교분석
- 난타vs블루맨그룹vsSTOMP
3. 세계로 나아 가는 한국 뮤지컬이 되기 위해서..
- 전용관 설립과 창작 뮤지컬의 활성화
본문내용
뮤지컬은 나의 꿈..
지금도 나의 인생에 커다란 충격이자 전환점이 되었던 1995년의 “사랑은 비를 타고”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그 두근거림을 이루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다. 물론
나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어떤 시발점이 되었던 무엇이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대중들에게
크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13년 전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뮤지컬이란
장르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컨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앞으로도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문화산업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 할지는 무궁무진하다.
1. 한국 뮤지컬 산업의 어제와 오늘
-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이라 하면 1966년에 초연된 “예그린악단”의 <살짜기 옵서예>이
다. 물론 그 전에도 1950년대 말에 드라마 센터에서 막을 연 <포기와 베스>가 있었으나
작품의 완성도가 낮아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없었다. <살짜기 옵서예>는 한국적 뮤지
의 성공을 제시하는 본격적인 뮤지컬로 그 때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제작비 300만원
에 출연자가 300명이라는 점과 관객동원도 7회 공연에 1만 6천명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옛날을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라는 뜻이 담긴 예그린악단(현재 서울시 뮤지컬단)은 우리 전
통공연을 세계에 널리 알린다는 취지로 1961년 창단됐다. 66년 3월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
재가 후원회장을 맡으며 제2 창단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예술적 지향점을 ‘한국적 뮤지컬
창출’에 두었다. 그 첫 성과물이 <살짜기 옵서예>다. 그런 만큼 스태프들과 출연자들의 자
부심과 열의가 대단했다. <살짜기 옵서예>는 당시 국내 최고 작가·연출가·작곡가·안무가가
참여해 만든 작품이다. 이 뮤지컬의 작곡을 맡았던 지금은 타계하셨지만 작곡가 최창권선생
은 제2회 “더 뮤지컬 어워드”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살짜기 옵서예>가 처음 공연된 10월
26을 “뮤지컬의 날”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한국 뮤지컬역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작품은 틀
림 없는 듯 하다.
참고 자료
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 CEO 송승환
아이 러브 뮤지컬
뮤지컬 포에버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