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서민문화의 발달과 과학기술의 발전
- 최초 등록일
- 2010.11.24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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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 서민 문화상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조선 후기 서민문화의 발달
1. 서민문화의 발달 배경
2. 서민 문학의 발달과 판소리
3. 미술. 민중의 모습을 담아내다
4. 천주교와 민간신앙.
ⅱ. 조선 후기 과학기술의 발전
1. 조선 후기 과학 기술의 발달 배경
2. 실학과 과학기술의 발전
3. 조선 후기 과학 기술의 진전
4. 조선후기 과학기술의 발전의 의의
Ⅲ. 결론
본문내용
4. 조선후기 과학기술의 발전의 의의
실학자들의 업적은 과학기술에 있어서의 실용적 가치로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으나, 과학기술사가에게는 커다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과학사의 문헌과 자료는 수집되지 못하였을 것이며, 완전한 체계를 세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저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영조·정조대에, 세종 때 과학문화의 르네상스라고도 하던 모든 분야에서의 제도를 재정비한 것은 실학자들의 학문적·사회적 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러나 영조·정조대의 과학기술 수준이 세종 때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되었을 때, 조선의 과학은 이미 청조를 통하여 들어온 서구과학의 영향에 압도되어 소화불량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뒤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의 진출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전통을 깨뜨리는 결과가 되었다. 거기에는 일본의 식민지주의가 심어 놓은 우리나라 과학의 전통에 대한 부당한 경멸과 일본과학의 우월에 대한 과대한 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서구 근대과학의 발전에 대한 놀라움에 압도되어 있던 우리에게 그것은 결정적인 과학풍조를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또 하나의 한국과학 전통의 단절이었다. 한국과학의 역사는 이렇게 현재와 단절된 채, 과거의 불행한 역사의 일부로 남겨졌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한국과학사의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고대로부터 중국 문화의 깊은 영향권 안에 있었다. 그래서 한국과학사는 실질적으로 중국과학사의 한 지류였으며 그 변형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과학의 진보는 내적 요구에 의해서라기보다 외부에서의 자극과 압력에 의하여 끌려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중국의 과학과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언제나 우리다운 것으로 개량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속에서 더욱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창조적 발견과 새로운 발전적 산물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과학이 창조적 모습으로 투영되는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http://www.daeil.or.kr/users/sagwan/na-history/textbook/htm/nabook32.htm
http://chang256.new21.net/board/board.php?db=530&no=1742
백남욱 제2판 한국문화사 대왕사 2006
김정환 가는 길 조선후기 푸른숲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