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고구려(유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0.11.10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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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평양천도(427년)부터 멸망(668년)까지 -
이 시기의 유물 중심으로 고고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고구려에 대한 내용입니다.
최대한 많은 유물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목차
Ⅰ. 서 론
- 고구려 문화의 고고학적 특징
- 평양천도 후의 고구려(시기 구분)
Ⅱ. 본 론
- 금동 미륵 반가상
-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 중원고구려비
- 을밀대
- 보통문
- 평양성
- 충주 장미산성
- 아차산 고구려 유적지
- 연천 고구려 유적지
- 고분벽화
(각저총, 무용총, 쌍영총, 장군총, 강서대묘, 장천 1호분)
Ⅲ. 결 론
- 고구려를 고고학적으로 바라본 의미
- 나아갈 길
본문내용
Ⅰ. 서 론
- 고구려 문화의 고고학적 특징
고구려는 정치와 군사적으로 강국이었으며, 제국적인 성격을 띄웠으나, 동시에 정신이 자유롭고 문화가 매우 발달한 문화국가였다. 고조선과 부여를 계승하였으므로 초기부터 문화가 발달했으며 5세기에 이르러 영토가 확대되면서 질적으로 더욱 성숙해졌고, 보다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고구려 땅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자연환경이 만나는 독특한 지역이다. 연해주와 흑룡강 일대에서 꽃피운 수렵삼림문화, 대흥안령 산맥에서 몽골로 이어지는 초원유목문화, 화북의 농경문화, 중국 양자강 유역의 남방문화, 그리고 한반도의 문화 등이 지중해적 성격을 띤 문화영토 속에서 독창적인 고구려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구려인들의 정체성과 포용력 있는 문화생태, 자유를 끝없이 희구하는 정신성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유스러운 고분벽화처럼 웅대하고 성스러운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자부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주고 있다.
본론에서 다른 유물과 유적에 대해서도 다루겠지만 고구려 문화 중에서도 고고학적 의의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고분문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고구려의 벽화 고분은 수도였던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집안현인 통구(通溝) 지방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 북쪽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고분들은 위치나 규모, 벽화의 내용으로 보아 왕족이나 당시의 지배층의 묘로 추정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